내가 했던 봉사단체는 영국 전역에 5개의 센터가 있었는데 런던근교 센터가 아무래도 인기가 가장 많았다. 나 또한 그 센터에 있었는데 한 달쯤 됐을 때 봉사자 예약이 full이라 2주 동안 다른 센터에 다녀와야 했다. 영국 남부 바닷가 마을로 기차를 타고 이동이라. 영어와 여러 복잡한 마음으로 위축되고 가라앉았던 내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창 밖으로 초록 능선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점점이 하얀 솜뭉치 같은 양들이 풀을 뜯어먹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늘과 초록과 하얀 점들을 눈에 담다 보니 어느새 도착, 기차역에서 센터까지는 걸어서 3,40분이라고 했다. 버스를 탈 줄 몰라서였는지 돈을 아끼려고 했는지 나는 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걷기 시작했다. 저 멀리 바다가 보였고 바다의 해안선 모양을 따라 마을 또한 둥글게 구부러졌다. 길을 따라 둥글게 둥글게 내 캐리어의 바퀴도 굴러갔다.
섬기고 도우려는 마음보다 영국에 가보고 싶어 봉사를 한다는 것이 영 탐탁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선택지면서 결국 또 고모의 말대로 하게 된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쯤 자주적으로 내 의사가 또렷하고 또 그것을 추진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었던 거 같다. 그때는 내가 무엇 때문에 이리 터덜터덜 걷는지 몰라 그저 답답했다. 여행만 하고 싶은 마음은 옳지 않고 선한 게 아닌 걸까. 항상 내가 원하는 것은 선하지 않다고 하는 것 같아(누가?) 마음이 눌렸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닌가 봐 하는 마음. 좋은 사람, 선한 사람이란 뭘까. 나는 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우울할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 우울한 걸까, 고모에게 인정받지 못해 우울한 걸까. 아무것도 분명한 게 없었다.
2004년 스물을 갓 넘은, 엄마아빠에 대한 감정도 신앙에 대한 확신도 내 미래와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어느 것 하나 선명한 게 없었다. 마치 저 수평선 끝엔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수평선 위에 내려앉은 영국의 공기가 그러한 것처럼.
그때 만난 게스트(센터에 휴양 차 묵으러 온 장애인 분들을 guest, 봉사자들을 volunteer라고 불렀다)가 Catherine and Jim이었다. Jim 할아버지는 휠체어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혼자서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분이셨고 Catherine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를 24시간 옆에서 돌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