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5:22-33
시댁 식구들과의 강원도 1박 여행을 앞두고 우리 가족은 하루 먼저 도착했다. 6:00 am 테라스 너머 바다를 옆에 끼고 큐티를 한다.
내가 너희에게 가려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복음을 위하여'라는 명분이 있는데도 바울이 로마에 가려는 계획이 여러 번 막혔다고 한다. 목적이 선하고 복음적인데도 허락하지 않으실 때가 있다. 중고등 학생이 매일 큐티를 한답시고 "하나님 날 좀 만나주세요" 기도를 하는 것이 얼마나 기특한가. 그런데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셨다. 내가 생각하는 응답은 주지 않으셨다. 도대체 하나님을 만난다는 게 뭔지를 모르겠으니 만난 게 아니지 않은가. 수련회를 가도 모두 왜 울면서 기도를 하는지 나는 왜 눈물도 감동도 기쁨도 없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하나님이 믿어진다는 건 뭘까? 이런 의문과 그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거절감을 오랜 시간 느끼며 10대와 20대를 지나왔다. 그 사이 결혼식 사건을 겪었고 남편과의 사이도 힘들었다가 육아를 절정으로 바닥을 쳤다. 내겐 아무도 없었다. 상처투성이로 우울의 굴에 파묻혀 내 할 일은 아무것도 못하는 너덜너덜한 나를 받아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도 남편도 어느 누구도. 상처는 처음엔 외부로부터 왔을지도 모른다. 차츰 내부가 더 커져갔다.
나는 나밖에 몰랐다. 내가 제일 불쌍하고 내가 제일 아팠다. 어린 나이에 이혼가정에서 의지할 곳 투정 부릴 곳 하나 없이, 그러면서 ADHD로(이땐 몰랐지만) 하고 싶은 것은 너무 많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존재였다. 그렇게 자기애와 자기 연민을 쌓아갔고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래야 내가 이러는 게 말이 되니깐. 그분들의 말과 눈짓에서 가시를 찾아냈고 온몸으로 찔렸다. 피를 흘리며 아무것도 안,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모두가 원망스러웠다. 사랑이 그렇게 많으시다는 하나님도 나는 싫으신가 보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헌금)하였음이라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렇지만 내가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던 부모님과 어른들로 인해, 거절감과 상처로 떠났던 주님께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부르짖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분들께 빚진 자이다. 영적으로 은혜를 입은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육적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신다. 육적으로 날 버리지 않고 거둬준 친척 분들과 엄마아빠에게 영적으로 갚을 차례다. 그분들이 구원받기 위해 기도하고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에 대해 회개하며 용서를 구해야겠다. 기도로 먼저 준비하려 한다.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해야 할 것이다.
내 상처 치유가 목적이 아닌, 내가 착한 애가 되기 위해서가 아닌, 인본적으로 하나 되는 행복한 가족이 목적이 아닌. 그래야 나도 너희도 함께 편히 쉴 수 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사람과 함께 해 주실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