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님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우리 집인데

by 그리다 살랑

간호사님이 2시까지 온다고 하셨다.

현재시각 1시 58분, 저기 우리 아파트 입구가 보인다. 나보다 먼저 도착하신다 해도 1층 현관을 열려면 내 핸드폰으로 벨이 울릴 테니 잠깐 기다려달라고 하면 되겠지. 순간 쎄 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전 수업을 마친 둘째가 친구선물로 주문한 택배가 도착했냐 물었고, 그걸 가지러 집에 잠깐 들른다고 했었다. 둘째와 간호사님이 문 앞에서 만나 같이 집에 들어가게 된다면? 마음이 급해졌다. 둘째에게 누가 오실 거라는 귀띔을 해준 게 없다. 하고 싶은 일(친구에게 선물 주기)은 참지 못하고 당장 해야 하는 아이인데 손님 때문에 바로 나가지 못하면 아이가 또 얼마나 징징거릴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침착하자, 나는 아파트 입구를 들어오지 않았는가. 혹시 몰라 간호사님께 문자를 보내니 "저 방금 아드님이랑 같이 집에 들어왔어요^^;;"라고 답장이 왔다. 아무도 없는 집에 둘이 들어가 있는 황당함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이 급해졌다. 뭔가 불안했다. 성룡처럼 한방에 후면 주차를 하고(거짓말) 달려 올라갔다.


띳띳띠 띳띠딧 띳띠띠

(띠링띠링)

띠띠리디 띳띳띠띠

(띠링띠링)

띠, 띠, 띠, 띠, 띠, 띠, 띠, 띠

(철컥)


급할수록 참 안 눌러진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불안한 눈빛의 여인 한 분이 앉아야 되나 서야 되나 엉거주춤 갈등하며 방황하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해요. (이상한 느낌에 두리번거린다) 얘는 어디 있지?"

"아... 아드님은 택배를 뜯더니 바로 나갔어요."

네? 네에.......

불안한 기분은 바로 이거였구나.
설마 낯선 분을 집안에 들이고 고민도 없이, 내게 아무 언급도 안하고 바로 나갈 줄은 몰랐다.

아니 나 알았나봐 그래서 불안했구나.




큰 아이 성장치료 주사교육을 다시 받는 중이다.

내가 사는 지역의 대학병원에서 유트로핀을 처방받았는데 이렇게 성장판이 거의 닫힌 아이는 좀 더 공격적으로 치료를 해야 한대서 서울의 한 병원을 찾아가게 됐다. 대학병원 선생님이 이 주사를 맞아도 키가 클지 장담할 수는 없다고 하시긴 했다. 그래도 안 해볼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치료인데 이 병원에서는 뭐라고 하시려나. 6개월 여 오랜 예약을 기다려 가게 된 그곳에서도 성장판이 90% 이상 닫혔고 앞으로 1-2cm 정도 더 크면 다행이라고 하셨다. 이런 아이는 주사를 맞히는 것만으론 부족하고 호르몬 억제제 약을 같이 먹어줘야 한단다.

"그럼 효과가 있을까요?"

"1,2cm보다는 더 클 겁니다."

"보통 이 병원에서 치료한 아이들은 다 키가 컸나요? 몇% 정도가 효과를 보나요?"

"그래도 98% 정도는 효과를 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은 실패 확률에 우리 아이는 안 들어갈 거란 보장은 없지만,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후회가 없을 부모의 마음으로 병원을 바꾸게 되었다. 자세한 정보를 공부하지 않고 그저 의사 선생님 말만 믿고 시작한 호르몬 억제제는 부작용걱정으로 섣불리 선택하지 않는 부모들도 많이 있나 보더라. 유트로핀은 이 병원에서 취급하지 않아 싸이젠으로 약이 바뀌었고 용액을 뽑는 방법이 조금 헷갈려 다시 교육을 받겠다고 했다. 아무리 체해도 손 따는 게 제일 무서운 나인데 이렇게 주사 놓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집에 온 둘째에게 물었다.

"oo아 엄마가 아까 늦게 온 건 미안한데, 집에 아무도 없는데 낯선 분을 그냥 혼자 두고 나갔어?"

"응 나도 좀 그렇긴 했는데 어쩔 수 없었어"

뭐가 어쩔 수 없었다는 걸까.

그래도 '나도 좀 그렇긴 했다'는 말에 위안이 됐다.

개념이 있긴 있구나,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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