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얘기하니 "삐졌네 삐졌어" 한다. 상처받은 거라고 표현해 주실래요? 아니다 삐진 게 맞다. 삐져도 단단히 삐졌다.
난 항상 좋은 엄마,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했다(이제와 보니 그렇더라). 아이들에게 라면은 주 1회만(아니 월 2회), 밀가루 음식 먹은 다음날은 영양가 있는 밥을, 간이 센 외부 음식 말고 삼삼한 집밥으로 애들 입맛을 사로잡은,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삼삼하고도 감칠맛 나게 요리할 줄은 모르고 그렇다고 msg를 첨가하는 건 싫다. 종갓집 맛김치를 좋아하는 아들 입맛은 마음에 안 들고 건강한 재료로 만든 엄마손맛 김치를 (양념장은 사더라도) 직접 담그고 싶다. 여기까지 내 말을 들은 소그룹 지체들이 난리가 났다.
"아악 숨 막혀요!"
"우리 엄마가 그래서 너무 싫었어요!"
"엄마가 한 김치가 제일 싫었어요"
"어머 왜? 엄마요리솜씨 장난 아니신데"
"맨날 먹으니까요, 지겨워!"
어머 그렇구나. 난 그런 밥이 로망이었는데.
맛있는 집밥을 먹고 싶었다. 집밥은 곧 엄마였고 엄마는 늘 그리운 존재였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엄마'는 음식과 관련이 있는데, 나는 음식 솜씨가 없을뿐더러 먹음직스럽게 담아내지도 못해 큰 열등감에 짓눌렸다. 내가 어릴 때 느꼈던 실망감을 아이들도 느낄까 봐 항상 신경이 곤두섰고 그래서 애써 만든(요리 과정은 어찌나 번잡하고 버거운지!) 요리를 맛있게 먹지 않으면 속상함, 짜증, 화, 자괴감 따위가 몰려왔다. '태어날 때부터 내가 해준 음식을 먹고 자랐으니 너희는 이 맛에 길들여져서 내가 해준 것들이 맛있어야 해'라고 생각했다. 근데 큰아이가 잘 안 먹고 맛없어하는 거다. 나는 거절감을 느끼고 상처를 받았다.
내가 해준 음식을 맛없다고 안 먹는 것에 거절감을 느낀다?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왜 이런 일로 '나'라는 존재를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을까. 이혼가정에서 자라온 나는 항상 내가 상처받았고 내가 피해자라는 인식이 있었다. 나는 불쌍하고 불행했으니 더 상처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기애였다.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인정해 주는 '누군가'를 간절히 바랐다. 나조차 나를 인정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현재의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내 욕심과 내 방식대로만 따라오길 원하는 독선이 30여 년 나를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했다.
교회리더이신 아들의 공부방 선생님과 통화를 하게 됐다. 아이가 요즘 어떠냐고 물으니 사춘기가 확실하다고 하신다.
- 그러니까요, 저 며칠 전에 걔 때문에 울었잖아요.
- 왜?
- 아니 집밥은 맛없다고 얼마나 짜증을 내던지 눈물이 났어요 너무 상처받아서.
- 당연한 소리 했구먼 뭘 울어
- 네?
- 아니 애들이 그럼 밖에 음식이 맛있지 집에서 먹는 게 맛이 있겠냐?
-......
우울증 약을 오래 먹었어도 몇십 년 굳은 생각의 회로는 자동적으로 자기 비하와 자기애로 갔다. 또 나를 피해자로 만들고 상처받은 영혼 코스프레로 아이에게조차 동정을 유발하려 했다. 그래도 예전처럼 나락으로 떨어지진 않았다. 바닥을 터치하고 금세, 4일 만에, 수면 위로 올라왔다.
아이 앞에 앉아 샤브샤브를 끓여주며 엄마가 그 말 듣고 많이 속상했다고 말했다. 설명을 더 하려는데 아이가 귀찮다는 듯 "알았어 미안해" 하고 입안에 밥을 욱여넣었다. "그게 뭐야"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고 아들도 "머 어떡하라고" 하며 멋쩍게 웃었다. 사춘기 아들의 당연한 소리 가지고 또 우울의 늪에 빠질 뻔했다. 햄버거 피자 라면이 좋을 나이의 별 것 아닌 말로 혼자만 울고 짜는 모노드라마는 이제 그만. 거절감이니 상처니 고만 씨부리고 아들이 원하는 저녁식사 대령을 위해 어서 글을 마무리한다.
유치뽕짝 애미의 영혼의 동갑내기 둘째가 이 글을 보더니 만화책 한 권을 펼쳐서 가져온다. "엄마, 엄마랑 형이 지금 이런 상황이야?"
비빔툰 4권 - 우린 날마다 자라요 중에서 by 홍승우
뻥, 형아 말에 차여서 엄마가 잠시 얼얼했구나.
근데 마지막 장 되게 찔리네. 밥 주는 게 당연한 그거를 가지고 생색이 막 나는, 나는야 이런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