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응가들이 항문에서 권투를 하고 있어!

ADHD 둘째

by 그리다 살랑

아홉 살 둘째가 엉덩이를 움켜쥐며 괴로워한다.

집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의 한 층 한 층이 더디기만 하다.

항문에서 권투를 하고 있다니 그 생동감에 나까지 마려운 것 같다.


며칠 전엔 39.3도로 열이 나는 아들에게 몸 상태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엄마, 중력이 세지고 있어."

뭔 소리야 아픈 애를 타박할 수도 없으니 짐짓 다정한 엄마목소리로 묻는다.

"그게 무슨 뜻이야?"

머리가 어지럽고 바닥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단다. 그래서 누워있을 수가 없단다.

그건 또 뭔 소리야


저 멀리 깐따삐야 별에서 날아온 독특하고 욕심 많고 고집 센 사랑스러운 이 아이가 우리 집 둘째이다. 초등 2학년인 올해, 궁금한 거 많은 활발하고 통통 튀는 남자아이를 달갑지 않아 하시는 담임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통통 튀는 아이의 창의성이라고 생각했던 점들이 그저 질문 많고 말 많은 밉상 아이로 전락한 게 내심 속상했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교회 유치부 예배를 드릴 때도 뜬금없이 무대로 나가 멀뚱히 인도자를 바라보거나, 모두 앉아있는 무리를 이탈해 자기 관심사를 향해 집중할 때도 나는 그 모습이 그저 엉뚱하고 독창적이라 생각했다. 오히려 평범치 않고 자기만의 시선을 가진 것 같아 좋았고 첫째와 다른 내리사랑에 눈에는 하트 뿅뿅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알아야 했다. 왜 내가 출산 후 10년이나 약을 먹고 있는지. 그리고 그 아이는 그런 내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음을.


남편은 내가 통통 튀어서 좋았다고 한다. 스물둘의 나와 스물아홉의 그가 사귀기 전까지 우리는 13년을 한 교회에 다니던 사이였다. 무뚝뚝한 평행의 감정선인 큰 바위얼굴 그가 보기에 CD 만 한 얼굴의 앳된 그녀는 상큼 발랄 재치가 딱 보기 좋게 통통거렸고 숫기 없는 그를 웃게 하는 유일한 미소천사였다. (...남편은 내 글을 안 보니까요) 한데 결혼 후 마주한 그녀는 정해진 규칙과 테이블 위에서만 춤을 추는 경쾌한 탁구공이 아니라, 분노했다가 우울했다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미친 탱탱볼이란 사실이다. (문방구에서 애들이 뽑는 탁구공만한 그 탱탱볼) 탱탱볼이 탱탱볼을 낳았다. 집안에 탱탱볼이 두 개가 되었다. 탱탱볼과 탱탱볼이 만나 탱탱볼을 낳았는데 그 탱탱볼이 또 탱탱볼을 낳은 거다. 친정엄마, 아빠 모두 ADHD인 우리는 ADHD 가족이다. 거기에 친정언니 탱탱볼은 형부 탱탱볼을 만나 탱탱볼을 3개나 낳았고 그리하여 친정모임을 하면 십여 명의 탱탱볼이 우글우글 탱탱거린다. 과묵한 볼링공인 남편과 큰아들은 이 모임을 기피한다.





둘째가 내 미니미 탱탱볼임을 진단받고 메디키넷 5mg을 처방받았다. 42kg의 육중한 무게에 너무도 미약한 5mg으로 열흘을 먹었고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병원 가서 얘기하니 10mg으로 용량을 올려주셨다. 드디어 달디달던 아이의 입맛에 자그만 변화가 일어났다. 급식이 너무 맛이 없단다. 원래 그랬단다. (그전엔 왜 3그릇씩이나 먹었을까) 메디키넷은 입맛을 좀 떨어뜨린다. 오늘도 역시 하교 후 집으로 바로 오지 않고 먼저 전화가 울렸다.


"엄마!! 나 마트 가고 싶어!"

"왜?"

"포켓몬 카드 사러"

"안돼 무슨 마트를 허구한 날 간대"

"내 돈으로 산다고!"

"니 돈이 어딨어! 그게 니 돈이야?! 돈 그렇게 쓸 거야? 집에 포켓몬 카드가 얼마나 많은데 또 사!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러라고 주는 줄 알아? (그러라고 주는 건가) 할머니 할아버지도 못 먹고 힘든데 그 돈 아껴서 너 주는 거야. 지금 벌써 몇 개를 사고선 또 산다고 그래!"


아이가 한껏 내지른 데시벨을 집어삼킬 듯 폭풍 잔소리 따귀로 응수한다. 까불고 있어, 쯧

수화기 너머 아이에게 남은 필살기는 단 하나, 세상의 모든 슬픔과 서러움을 끌어모은다. 모든 에너지를 단전에 모아 원기옥이 된 서러움 덩어리를 두 눈 가득 발사한다.


"엄마는 아무것도 못하게 해! 엉엉"

"아무것도? 또 뭘 못하게 하는데?"

"이모네도 못 가게 하고!"

"이모 과외하느라 바쁘다고, 너랑 매일 놀 수 없어"

"명탐정 코난도 못 보게 하고!!"

"코난을!! 확 그냥!! 너 혼자 잘 수 있어? 잠도 혼자 못 자면서 코난은 무슨 코난이야 그거 보고도 혼자 잘 수 있을 때 보랬지, 그리고 그거 12세 이상이거든? 너 12세 안 됐잖아! 놀 친구 없으면 얼른 집으로 와!"


진짜 올 줄 몰랐는데, 웬일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이것도 약의 효과인가. 웬만해선 해 지기 전까지 들어오는 아이가 아닌데. '엄마는 아무것도 못하게 해'를 한번 더 내뱉더니 영어 만화를 본단다. 왠지 딴지를 걸고 싶지만 영어니까 허락해 준다. OO김밥집의 돈가스김밥이 먹고 싶단다. 급식을 안 먹어서 배가 고프단다. 뭔가 성질을 내고 싶지만 참는다. 그래 엄마가 (귀찮지만) 지금 나가서 김밥 사 줄게, 자 봐봐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거 아니지? 이를 악물고 미소를 지으며 확인시킨다. 티브이에 눈을 고정한 채 기계적으로 대답을 한다. 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지 않니? 확인받고 싶지만 오늘은 못하게 한 게 있으니 이만 참는다.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구체적 이게도 많은 우리 둘째, 메디키넷 10mg으로 마음속 욕망들이 좀 다스려지면 좋겠다. 엄마는 10년 동안 먹은 것을 너에겐 10일 만에 바래서는 안 되겠지. 그나마 더 오래 약 먹은 엄마가 통통 튀는 너의 탱탱볼을 잘 받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 항문에서 응가들이 권투를 하는 네 언어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이길, 중력은 여전히 네 주변에서 세졌다 약해졌다 하길, 차가운 눈밭에서 뜨거운 눈싸움을 올 겨울에도 할 수 있기를 .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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