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은 맛없다는 아들 말에 울었다

사춘기 큰아들

by 그리다 살랑

다른 엄마들은 집밥을 어떻게 차려줄까?


한정식집만큼은 아니더라도 김치볶음이라도 먹음직스럽게는 담아주겠지. 밥 한 그릇을 담아도 맛대가리 없어 보이고 김치를 썰어 담더라도 참 없어 보이게 담는, 똥손이란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문제는 그걸 개선할 의지와 노력이 없다는 거다. 그래 그러니까 아들한테 이런 소리 듣는 거지. 나도 어릴 때 엄마가 반찬통 그대로 꺼내놓고 김치찌개만 주는 거 싫을 때 있었잖아. 그래도 요즘은 요리솜씨 많이 나아졌다고 남편이 그랬는데, 청국장도 멸치볶음도 맛있게 했는데 (하지만 큰아들은 청국장과 멸치볶음을 싫어한다) 며칠 전에 해줬던 약식 육개장이랑 김치찌개도 잘만 먹어놓고선. 근데 그때도 국이랑 김치만 덜렁 놓아서 초라해 보이긴 했지.


드라마 도깨비에 나오는 푸른빛의 장검이 심장을 관통하면 이런 느낌일까. 변명조차 떠오르지 않고 가슴 한 구석이 서늘했다. 둘째와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며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었는데 어쩐지 목소리가 떨려왔다.




10년째 우울+ADHD 약을 복용 중이다.


일상생활을 못하게 했던 자기 비하와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우울과 무기력증은 많이 나아졌고 아들 둘을 키우며 미친 x처럼 포효하던 분노도 요즘은 거의 없다. 주의력은 아직도 책 한 권 읽거나, 글 하나 쓰려면 엄청나게 산만한 과정과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이전에 비하면 너무나 나아졌다. 아이들도 열세 살 아홉 살로 이제 제법 커서 어릴 때처럼 손이 많이 가지는 않는다. 눈물도 말랐고 감정도 무덤덤하다. 도통 울거나 슬픈 일이 없다.


6학년인 큰아이는 코로나로 갇혀있던 4학년 즈음 2차 성징의 징후들이 나타났다. 신발사이즈가 1년도 안돼 달라지고 키도 쑥쑥 자라나고 거뭇거뭇 코털도 나기 시작했다. 5학년땐 변성기로 쇳소리 때문에 안 그래도 웅얼거려 소통이 잘 안 되는 모자지간에 서로 더 성질만 주고받기도 했다. 너무 성장이 빠른가 싶기도 했지만, 성장이 빠른 애도 있고 느린 애도 있는 거지 하다가 얼레벌레 시간이 지났다. 거칠게 변하는 아이의 눈빛과 말투, 태도들이 낯설어 이런저런 이유로 올해 들어 키 성장검사를 제대로 해보게 됐다. 왜 이제야 왔냐는 의사 선생님의 타박과 더불어 예상키가 165?! 현재키는 164다. 뼈 나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2년 반이 빠르다고 한다. 우리 부부의 작은 유전자를 탓해보지만 아이가 애기 때부터 발이 크고 뼈대가 굵직 큼직해서 맘을 놓고 있었다.


대학병원에서 유트로핀이란 주사약을 처방받아 맞추기 시작했다. 아이의 맨 살에 바늘을 어찌 찌르나 걱정이 되어 두루마리 휴지를 엎어놓고 콱콱 찔러가며 연습을 거듭했다. 한데 이렇게 치료가 늦은 아이는 더 공격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해서 또 다른 병원으로 가게 됐다. 성장판이 닫히기 직전이라며 호르몬 억제제까지 먹어야 한다 하셨다. 그 약을 먹으면 남성성이 더욱 짙어질 것이라 하셨는데, 그 탓인지 아니면 사춘기 탓인지(같은 말인가) 아이가 짜증과 욱이 심해지고 무엇보다 원래도 무뚝뚝했지만 말을 너무 이성적으로(?) 해서 나는 상처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최근 몇 주 동안 자꾸만 배달을 시켜 먹자기에 요구를 들어주었는데 그러다 보니 이번 주는 4,5일 연속으로 외부음식을 먹게 됐다.


"오늘 저녁은 머야?" 또 묻기에 집에 있는 거 먹는다고 했더니 "아 정말 싫어!" 하며 또 배달음식을 먹자는 거다. 돈 없다니 자기 돈 있단다. 니 돈 다 쓰면? 했더니 짜증을 있는 대로 낸다. "아무튼 오늘은 무조건 집밥이야"하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쇳소리를 있는 대로 지르며 "아 집에서 먹는 거 진짜 다 맛없어!!" "뭐라고?.... 아무튼 오늘은 진짜 집에 있는 거 먹어야 돼" "알았어 알았다고!"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간다.


뼈 나이의 속도만큼 사춘기도 빨리 온 거겠지? 아직 아이의 사춘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는데, 아이는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 훌쩍 커 있다. 사춘기니깐 그런 거겠지 하기도 전에 30여 년 나를 점유하던 우울과 자기 비하의 찌끼들이 사정없이 흔들어졌다. 엄마로서 자격 없어 자책하던 생각과 감정들이 마구 헝클어지며 예전처럼 비참한 감정에 휩싸였다. 옆에 있던 둘째에게 "OO아 엄마, 형이 한 말 때문에 너무 속상해" 왈칵 울음이 쏟아졌다. 내가 왜 이러지 정신과 약 때문에 슬프지 않을 텐데. 영화 때문에 눈에 자꾸 눈물이 차오르던 둘째가 내가 울자 나를 끌어안고 같이 흐느꼈다.


"흑흑 근데 너는 왜 우는 거야? 으흑흑"

"엄마가 우니깐 흐으윽"

"....."


큰 아이로 시린 가슴에 성냥개비가 칙 그어진다. 울고 떼쓰고, 하고 싶은 것 요구하는 것이 백만 가지에, 꽂힌 건 꼭 해야 되는 둘째가 너무 힘들어 최근 ADHD검사를 받은 터였다. 감정이 풍부한 우리 둘째도 약의 도움을 받아야 한단다. 나와 꼭 같은 메디키넷을 먹기 시작한 지 5일째, 이상하다 용량이 너무 적은가 약발이 안 받는다. 다행이다, 엄마랑 같이 울어줘서 고마워. 엄마는 앞으로 형아의 사춘기를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너의 치료를 위해서도.



제목사진: 최근 내가 한 요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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