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을 3 공기 먹고 온 둘째가 형이랑 계곡에 뛰어들더니 텀벙텀벙 상류 쪽으로 사라졌다. 30분 후엔 가야 하는데 그 시간까진 오겠지. 한데 우리 차 앞에 다른 차가 이중주차를 하려고 한다.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차, 나가려는 차 뒤엉켜 난리직전이라 그냥 지금 나가자는 남편님. 한데 이놈에 두 그렘린 아니 아들들이 안 보인다.
아이들 찾아 상류로 상류로..
오늘 처음으로 크록스가 아닌 스니커즈를 신고 온 나는 발이 젖지 않기 위해 물 없는 돌만 골라 밟으려고 애썼다. 긴 청치마 때문에 다리가 앞뒤로 잘 벌어지지도 않아 깨작대는 보폭으로 아이들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왜 가도 가도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지. 교양이고 머고(있었던 적?) 고래고래 이름을 불러가며 올라가는데, 도란도란 계곡의 내가 말한 바로 그 로망을 즐기던 어르신들이 남자아이 둘이 올라가는 걸 봤단다. 하아, 어디까지 간 거야. 급기야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인적 드문 상류까지,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하고, 치마는 허벅까지 끌어올린 채 스니커즈 신은 발로 텀벙텀벙 물속을 거닐며 찾아다녔다. 주차장 출구를 빠져나가 저 아래서 기다리던 남편이 하다못해 차를 세워두고 카페로 돌아가 보겠단다. 뱀이 나올까 싶은 한적하고 무성한 계곡 상류까지 올라와 입산금지 줄이 쳐진 곳까지 온 나는 걱정 반 두려움 반 여기까지 올라온 아이들에게 화가 나려는 찰나 남편의 전화가 걸려왔다. 내려오란다 애들 여기 있다고.
혹시라도 걱정됐던 마음은 허탈과 짜증으로 바뀌어가고 내게 남은 것은 젖은 청치마와 스니커즈 그리고 비 오듯 쏟아지는 온몸의 땀. 로망은 로망일 뿐 기대하지 말자, 그 옛날 90년대 개그콘서트에서 들었을 법한 어느 구호가 떠오르며 하류로 하류로.. 그래, 애들에게 아무 일 없었으면 됐지 무엇을 바라랴.
아래로 내려오니 에어컨 빵빵한 차 안에서 유튜브를 시청하며 기다리는 세 남자가 있다.
둘째 놈이 너무도 의아하게 "엄마! 왜 이렇게 젖었어?!"
만화책 보던 큰 놈은 나를 힐끔 보더니 다시 책으로.
그나마 관심 가져주신 남편께선 날 보자마자 푸흡하고 입틀막 하며 어디 계곡 물에 빠졌었냐 묻기에
"이거 다 땀이거든요" 나직이 말했더니 둘째 놈 너무나 안 됐단 목소리로
"엄마 너무 고생했겠다" 한마디 던지고 다시 유튜브의 세계로 빠져든다.
로망스런 하루로구나.
그래도 둘째가 밥 먹으러 간 사이 책 읽으며 짪은 로망을 즐겼다.
짧으니까 로망이다.
차 안에서 한마디도 안 하고 집에 왔는데
내 기분 안 좋은 거 아는 사람?
우리 집 어느 남자도 그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아이가 계곡에서 찍어 온 사진. 맨 마지막은 뭘 찍은 것일까. 곤충이든 뭐가 됐든 뭔가가 보이는 분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산산이 부서진 로망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로망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로망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로망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로망이여! 사랑하던 그 로망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