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에 적당히가 안된다. 한 개를 먹으면 또한 개를 부르고 이 한 개는 또 한 개를 부른다.
다들 식탐조절 잘들 되시나요? 저는 잘 안됩니다.
뭔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얼른, 당장, 오늘 안에 먹고 싶다. 물론 이래서 adhd약을 먹고 있지만 약빨이 없으면 정말 절제가 안된다. 작년보다 3-4kg 늘어난 뱃살과 허벅지로 우울해지고 그 우울함 때문에르뱅의 달콤함을 다시 찾는 것, 요즘 나의 모습이다.
미국에서 건너온 아리따운 그대, 르뱅쿠키여 널 어찌하면 좋니
적당히 우아하게 우리, 일주일에 한 번만 만날 수는 없는 거니.
브런치에 르뱅이 싫다는 확언글을 쓰고 나서 한동안 조금 먹긴 했다. 서서히 줄인다 싶었는데 그 대신 생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타입인가 보다. 생라면은 몸에 진짜 안좋다해서 다시 르뱅을 찾고 있다. 이 무슨 시소 타기냐 아 정말 울고 싶다.
역시 나는 일평생 절제라곤 안 되는 사람인가 싶어 또 우울을 파고 들어가려 한다. 우울은 언제든 다시 돌아가고픈 겨울아침 이불 속이다. 아침이 밝아 할 일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데 자꾸 기어들어가고 싶다. 왠지 루틴대로 성실히 잘 살고 있으면 내가 아닌 것 같고 뭔가 하나가 빠진 것처럼 허전하기도 한, 그래 내가 그렇지 하며 그냥 드러눕고 싶은 나의 편한 피할 자리 우울.
또 한 가지 포기하기 싫은 게 있다. 최근 들어 빠지게 된축구.
정확히 말하면 축구가 아니라 이강인과 손흥민이다. 그들을 좋아하면 곤란한 것이 경기가 다 새벽에 있다. 새벽에 경기를 보면 다음날 하루종일 헤롱거리 거나 루틴이 깨져 아이들 돌보기나 집안일이 엉망이 된다. 생활리듬이 깨진다. 그런데도 안 볼 수가 없는 게 이번 아시안컵 그중에서도 특히 손흥민을 통해 받은 감동과 배움이 얼마나 컸던가. 종료직전까지 포기 않는 투지와 리더십, 그리고 사력을 다하는 최선. 어떻게 하면 그렇게 온 힘을 부어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나는 한 번이라도 그런 적이 있던가.
아 내 인생 최초로 어쩔 수 없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던 일이 두 번 있었다.
물론 찐으로 맞서기엔 무서워서 무통주사의 힘을 빌리긴 했다만 아이가 나올 즈음엔 나도 모르게 젖 먹던 힘까지 짜내졌다. 처음으로 온 힘을 다한다는 게 뭔지 알게 됐었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자존감이 좋아졌다. 물론 약도 먹고 말씀도 묵상하며 여러 가지가 영향을 주었지만 그중 하나가 출산이었다. 처음으로 뭔가를 해냈다(?)는 기분. 그 후 육아과정에서 자존감이 다시 바닥을 치기도 했지만 바닥에서 허우적대는 시간이 점점 짧아졌다.
아이를 낳기 위해 저절로 최선이 다해지던 내 몸의 수고를 깎아내릴 건 아니지만 출산 말고는 무엇인가 사력을 다해본 적이 없다. 늘 벽을 만났고 주저앉았고 포기와 우울로 피했다. 사력을 다하는 게 뭔지도 모르거니와 사력을 다해도 안된다는 것만 확인할까 봐 두려웠다.
르뱅쿠키를 하나 더 먹으려다가 주섬주섬 잠바를 입고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현관을 나가 냅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남편 몰래 꿍쳐뒀던 약간의 비자금으로 필라테스 일대일 레슨을 결제했다. 이제 내겐 조금의 비자금도 남아있지 않다. 내 전부(비자금)를 바쳤으니 이걸로 '사력을 다한다'의 첫 스타트는 끊은 거 같다.르뱅쿠키를 끊겠다는 사력이아니라, 적당히 조절하며 먹겠다는 사력이다. 이건 사력일까 아닐까 아리송하다.
20층 계단을 두 번 오르고 나서(세 번은 못 가겠다) 헉헉대는 숨소리와 터질듯한 허벅지로쿠키를 꺼냈다. 쫀득하고 폭신하게 한입 베어문다.르뱅을 못 끊는나를 보며 우울해하기보다 기분 좋게 먹을 방법을 찾으련다. 사력을 다하진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보려는 나를 응원하려 한다. 이렇게 한겨울 이불을 걷어내고 햇빛 속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