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카페는 빈티지 내추럴 우드 감성 가득한 카페다. 그래 너랑 카페 가는 게 얼마만인지. 매번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외출이기에 그저 동행해 주심이 성은이 망극하다. 물론 아드님이 자의로 행차에 나선 건 아니다.
12월 30일 방학식부터 1월 말 현재까지 책상에 줄곧 한 종류의 만화책만 펼쳐놓고 과거시험이라도 보는지 매일같이 앉아서 들여다보고 있다. 방학이라고 해가 중천이 되도록 침대에 쳐 누워있는 그런 게으르고 나태한 생활은 극히 혐오하신다. 옛 선비들이 그러했듯 일정 시간만 되면 강시처럼 일어나 눈곱도 떼지 않고 책상 위에 자리를 잡는다. 핸드폰에 안부인사를 여쭙고 태블릿도 밤새 안녕하신지 동생에겐 보인 적 없는 친근한 손길과 눈인사를 건넨다. 문안이 끝나면 머리에 둥지를 틀고 까치가 알을 낳아도 모를 정도로 곧바로 집중모드로 들어간다. 조식여부에 대해 여쭈면 과거급제가 코 앞인데 학문의 중함을 모르는 한심한 중생(엄마)을 눈빛과 변성 온 목소리로 점잖게 나무란다.
흔한 남매로 논문 쓰니?
몇 주쯤 지나면 지겨워서 글책도 읽겠거니, 아들의 편안한 방학생활을 보장해 주는 넉넉한 마음의 에미 코스프레도 정도가 있지 이건 머 밥주걱 들고 쫓아가 직사게 엉덩이를 후려치고 싶은 이내 마음을 약 뭉치(내 ADHD약)를 삼켜가며 진정시킨다. '아이는 놀아야지, 지금 진 빼면 정작 공부해야 할 중고등 때 힘 못쓴다, 지금은 엉덩이 힘을 기를 때' 등등 에미가 믿고 따르는 진리들을 곱씹으며(근데 13살까진 아닌 것 같아..) 흔한 남매로 엉덩이 힘이 길러지고 있는 건 아닐까 정신승리로 버텨내는 나날이었다.
하나도 안무서운 남편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만화책만, 그것도 다양하게도 아니고 오직 흔한 남매만 보고 앉아있는 꼴을 인내 9단 남편도 보기 힘들었는지 오늘은 엄마 따라 카페 가서 책 좀 보고 오란다. 카페는 나 혼자 책 보고 글 쓰려고 가는 곳인데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카페라면 싫어하는 선비님을 모시고 가라굽쇼??
각 카페의 장단점을 쇤네가 아뢰는 사이 집에 굴러다니던 아무 글책이나 한 권 들고 나온 선비님은 그것마저 들 수 없어 쇤네의 봇짐 속에 책을 욱여넣으셨다.
중2병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너는 지금 중2가 아니다. 초6이 된 건데 너는 왜 중2처럼 행동하는 걸까. 안 그래도 뼈나이가 보통 아이들보다 2년 정도 빨라서 성장이 중1쯤 멈춰버릴 거 같다고 진단을 받았다. 뼈성장에 따라 호르몬도 빨라서(?) 중2병이 지금 온 거 같은데 학습능력은 왜 중2가 아닌 거냐....
선비님과의 데이트로 쇤네는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잠 못 자고 젖 물리며 (화도 내며) 키웠더니 어느새 에미 키를 넘어가는 듬직한 아들이 된 것 같고, 내 카페시간을 뺏은 게 아니라 둘이 함께 자유시간을 누리면 된다는 기대감도 들었다. 비록 내가 원하는 내추럴 빈티지 감성 북카페는 아니지만 프랜차이즈 넓디넓은 정형화된 카페일지언정 둘만의 데이트를 즐겨야지. 에미의 팔짱을 매정하게 뿌리쳐도 까르르까르르 쇤네는 그저 웃음만 나더랬죠.
저기요, 선비님?!?
카페도착 후 자리를 잡자마자 레모네이드와 초콜릿케이크를 철근같이 씹어 먹고 돌아갈 고향길이 까마득해 벌써부터 체력비축에 들어가시는, 선비는 개뿔 13살 너는 나의 '기쁨이(태명)'. 에미를 닮았다는 너의 눈이 보고 싶다. 진정 날 닮아서 잘 생겼다(?) 소리를 듣는 것인지 확인할 길을 다오. 나의 기쁨이는 눈이 잠긴 지 오래구나. 언제쯤 너의 말똥한 눈을 볼 수 있을까. (항상 풀려있다. 근데 너 밖에서 드러눕고 이런 거 되게 창피해하지 않았니) 선비님은 한숨 푹 주무시고 카페에서 저녁까지 해결하고 집에 가서 다시 논문 연구에 박차를 가하셨다..
만화책만 본다고 머라 했더니 판타지 웹소설을 구해달랜다. 맘엔 그다지 안 들지만 만화책보단 낫겠거니 하고 구해줬다. 부디 이 소설로 다른 논문 주제를 잡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