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인시장까지 버스를 세 번 타고

국지성 집중호우가 기다리는 저녁

by 그리다 살랑

아홉 살 둘째님과의 머나먼 여정이다.


첫 번째 버스는 빨간 버스다.

판교에서 혜화동을 가야 한다. 예배 후 시간이 남아서 통인시장에 가기로 했다. 5시에 사촌오빠 집에서 고모부 생신이 있다. 도의상 고모네 일에는 거절을 못한다. 저녁에 국지성 집중호우와 낙뢰가 발생한다고 안전문자가 왔는데 수원집까지 무사히 갈 수 있기를.


두 번째 버스는 파란 버스다.

강남이니 외국인 두어 명은 타줘야지. 그들의 대화를 알아듣고 싶다. saucer 얘기 안 하려나(이전 이야기 "sauce도 아니고 saucer는 머야" 참조) 브런치에 열심히 핸드폰을 두드리며 파란 버스의 여정이 끝나길 기다린다. 지금까진 운 좋게 앉아서 무난하게 왔다. 마지막 초록 버스만 타면 된다.


우려하던 일, 쉬가 마렵단다.

다행히 내릴 때쯤이었다. 광역버스 중간이었으면 낭패인데 이 정도면 선방이다. 서둘러 내리다 보니 원래 내려야 할 곳보다 한 정거장 전에 내렸다. 분명 '다음'역은 종로 2가 사거리라고 들었는데 내려보니 종로 2가다. 맞는 말인데?! '이번'역이 종로 2가 사거리일 때 내려야 됐던 건가- 머가 어떻게 된 거지.

일단 닥친 일부터 해결하도록 한다. 화장실이 있을 만한 곳이 어디일까, 어디가 자유로이 들어갈 수 있을까. 길 건너 저쪽에 버거킹이 보인다. 우리 같은 손님이 많았던지 1층도 2층도 화장실이 없다. 끝없이 올라가면 언젠간 있겠지. 3층까지 견디고 올라간 자만이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 한 가지 난관은 해결했다. 다음 정류장까지 조금만 걸어가면 되는데 아, 눈앞에서 세 번째 타야 할 초록버스가 지나간다. 아까 파란 버스도 눈앞에서 놓쳤는데 두 번이나 이러는 건 싫다.


못 걷겠단다. 택시 잡으란다.

아침은 꽈배기 빵과 교회에서 나눠준 핫도그. 점심도 안 먹고 현재시간 1시 30분. 배고플 만하다. 근데 딜을 했잖아, 통인시장에서 기름떡볶이를 먹기 위해 배가 고파도 참고 서울까지 가기로. 딜은 어디 가고 주저앉아 택시 잡으라고 진상 피시는 너님. 도착도 전에 힘 빼기 싫어 나도 그냥 택시를 타기로 한다. 택시가 잘 안 잡히자 카카오로 부르라는 너님. 즈용희 흐르그.


가는 길이 아직 안 끝났다.

오는 길도 남았는데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