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학년을 마치고 외국으로 나갈 꿈을 꿨다.
학교도서관과 상담실에서 매일 소소한 알바로 야금야금 모아놓은 돈이 조금 있었다.
영어를 사용하고 싶었고 유럽이었으면 좋겠다.
영국의 풍광을 느끼며 트래킹 하는 프로그램에 마음이 끌렸다. 그런데 기간에 비해 너무 비쌌고 젊은이들이 떼로(?) 몰려다니니 위험한 일은 없을지, 어떤 프로그램인지 아는 바가 없으니 불안했다. 우리 집안의 정신적, 물질적 지주셨던 고모는 역시나 탐탁지 않아 하셨고 그 대신 사촌오빠가 다녀왔던 영국의 장애인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추천해 주셨다. 여행이 아닌 한 센터에서 머무르며 그곳에 1-2주 휴식을 취하러 온 장애인 분들을 한 명씩 맡아 보살피는 일이었다.
봉사의 마음보다 영국에 가보고 싶다는 로망이 더 큰 상태로 이곳을 지원하는 게 괜찮은 걸까. 나의 유럽로망을 위해 이들을 이용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깨달을 수 있을 거라는 친척오빠와 고모의 권면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다. 영국의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싶었지만 내가 가진 돈으로는 불가능하니 그 말을 믿고 싶었던 거 같다. 또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할 테고.
런던 템즈강이 내려다보이는 길 한복판에는 휠체어에 앉은 영국인 소녀에게 쩔쩔매는 스물두 살의 동양인 여자아이가 있다. 그녀는 내가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 그렇게 화가 났던 걸까 아니면 동양인이라 싫었던 걸까. 대단한 봉사의 마음을 품고 가지 않은 것이 늘 찔렸었기에 그 자체로 이미 나는 주눅이 들어 있었다.
킨포크 테이블의 사진 중에서
런던 근교 장애인들의 휴식처라 이름하던 센터.
한적한 교외 뒷마당엔 꼭 이런 잡목들과 잔디가 우거져 있었다.
무엇을 배우고 깨닫게 될지 알 수 없는 미지의 런던봉사생활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