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히피히피펌

by 그리다 살랑


교회오빠 남편은 츤데레였다. 린 7살 차이다.

무뚝뚝하게 후배들에게 먹을 걸 사주고 쿨하게 가버리거나 우리가 먹는 동안 조용히 뒤에서 정리하거나 치우곤 했다. 그게 막 뭔가 있어 보이고 멋있어 보였는데 알고 보니 그냥 사회성이 없는 거였다. 사교적이지 못해서 그냥 집에 가거나 정리하고 있었던...


천생여자 생머리 이미지를 좋아했던 남편은 OO언니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다. 비가 오면 그 언니는 자기 옆집에 살던 남편에게 우산을 부탁해서 같이 쓰며 집에 가기도 했는데 나는 그 둘을 보며 잘 가라고 배웅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결혼은 생머리 그녀가 아닌 천방지축 철없이 까불대던 나랑 했다. 뭥미.



인생에 한 번쯤은
미친 듯이 머리를 볶고 싶었다.


똑단발 중고생을 졸업하고 남편과 연애하며 그의 여성상인 긴 생머리를 고수해 왔다. 머, 남편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 머리말고는 뭘 해야 될지 모르기도 했다. 간혹 웨이브를 하거나 자른 적은 있지만 큰 변화를 준 적은 없었다.


22년 봄, 마흔을 앞두고 있었다. 마음이 급했다. 머리를 조금 볶아볼까-가 아니었다. 파격적으로 볶아야 했다. 왜? 나는 삼십대니까, 삼십 대는 돌아오지 않으니까, 이건 나의 마지막 삼십대니꽈! 흑흑. 삼십 대의 욕망과 온 열정을 머리에 쏟아부어야 했다. 파격적으로 섹시하고 관능미 넘치는 그런 녀자! (feat. 싸이)


왼쪽 언니처럼 할까, 오른쪽 언니처럼 할까. 가운데서 두근대는 생머리 나


"이렇게 섹쉬하게 해 주세요!!"

이글이글 불타는 각오로 사진을 내밀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히피펌을 해달라고 했다. 이걸 하면 분명히 나도 이 느낌이 날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왜지. 의도는 알겠다며 나를 진정시키던 미용실 언니가 고뇌의 시간을 거쳐 드디어 용단을 내리셨다. 일반 펌 일명 뽀글이 펌을 뿌리부터 하자는 건데 파격적인 부스스함을 원하는 나를 위해 좀 더 자잘하게 컬을 내기로 하셨다. 대망의 관능미로 거듭나는 작업이 시작됐다.


머리카락 끝 상한 부분은 쳐내신다고 한다.

암요암요, 쳐내야지요.

사진과는 머리길이가 달라서 느낌은 다를 수 있단다.

그쵸그쵸, 느낌은 좀 다르겠죠.

오늘따라 부연설명이 많으시다. 사진이랑 느낌 다를 수 있다고 아까 말하셨는데 또?

아이 참 저도 알아요. 저 그렇게 터무니없는 거 바라는 사람 아닙니다?!


히피펌을 한 나는 어떤 모습일까.


왼: 동네언니가 머리숱 많게 그려달래서 그려 준 그림 오: 초록담쟁이 이수희작가님의 그림을 따라 그렸다.


왼쪽그림은 동네언니가 자신의 사진을 내밀며 그려달라고 해서 그린 것이다. 머리가 풍성했으면 좋겠대서 있는 대로 펌을 넣어줬다. 메두사 아님 그다지 닮진 않았다. 오른쪽은 초록담쟁이 이수희 작가님의 온라인 수업에서 따라 그렸다. 스웨터는 저렇게 칠해야 스웨터스럽다는 걸 배웠다.


한두 시간 지났나. 펌의 중간과정은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그 굴욕의 시간을 지나 꼬불꼬불 말아놓은 그 도구 이름을 모르겠음를 풀고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하면.....


왼: 펌 직후 오: 한두 달 지난후

짜잔 ~

잠시만요?! 왜 라면 먹는 마이콜이 떠오르는 거죠? 미용실 언니, 느낌이 '조금' 다른 게 아닌데요?! 그분은 잘못이 없다. 펌을 끝내고 본 거울에서 마이콜의 향기를 진하게 느꼈지만 처음 해본 일탈의 짜릿함과 즐거움에 나는 도도한 워킹으로 아이 하교 마중을 나갔다. '남미여자, 팜므파탈, 불륜녀' 엄마들의 거침없는 소감을 들으며 난 그날의 주인공이 됐다. 내 생각입니다.


마이콜이 들이부은 라면 면발 같던 머리는 한 달 두 달이 지나며 다행히 내가 원하는 부스스함을 찾아갔고 그렇게 나는 여름 내내 데님 원피스와 팜므파탈 머리로 온 동네를 장악했다는 그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


아, 퇴근하고 집에 와 내 머리를 본 남편의 소감은 -

날 한 번 쳐다보고 현관 신발을 정리한 후 주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ISTJ 그의 퇴근 루틴이었다.



KakaoTalk_20221223_134407281.jpg 여름 내내 입고 다닌 데님원피스의 나, 허리가 이렇게 잘록하진 않다는 걸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