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카톡대화끝
대화 끝
더 묻지 않는다.
뭘 아냐고 물으면, 또 그걸 모르면,
그게 뭔데? 하고 다시 물어야 인지상정 아닌가.
설명해 주려고 팔 걷어붙이는데 자기 갈 길 가는 사람, 그런 남자랑 살고 있다. 혹시라도 오해 마시라 남편의 저장명은 고치기 귀찮아 16년째 쓰고 있는 것뿐.
그리하여 오늘은 딴 남자 얘기다. 흥.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이여 내 호응에 토라진 배우자가 어디선가 옛사람을 떠올리며 주절주절 이야기를 풀고 있을 수 있다. 잘 찾아보시길. 우리 남편은 볼 가능성이 1도 없어서 내가 쓴 브런치 글이라고 들이밀어도 무심히 밀쳐내는 너란 남자 난 자유하다. 근데 초1 아들이 자꾸 와서 묻는다. "엄마 남편아 보지 마오가 뭐야? 딴 남자 이야기가 뭐야?" 저리 좀 가줄래
청량리역에서 같이 기차를 타고 군부대 면회를 갔다.
아 잠깐잠깐,
이거 남편이 지인짜 모르는 얘긴데 아, 진짜 할까?
아니 머 무슨 일 있었어? 아무 일도 없었는데 왜 호들갑이야.
과거 일인데 뭐 현재진행형 아니잖아?
아 잠깐잠깐,
이 글의 당사자오빠 그대는 브런치를 아나요? 알면 어떡하지.
아니 같이 기차 타고 군부대 면회 간 남녀가 나뿐이겠어,
그냥 난 카페에서 눈 덮인 창밖을 보다 스무 살의 내가 떠올랐을 뿐이야.
설렘과 풋풋함과 어색이 가득했던 그때의 나 말이야.
다시 시작한다.
동아리 친구 군대 면회를 간다고 했다.
나도 가고 싶다고 한 건지 그가 같이 가자고 한 건지 생각은 안 난다. 안나는 걸까 어쨌든 그 친구 포함 우리 셋은 같은 동아리였기에 '동아리 선배 면회'라는 명목으로 그를 따라나섰다. 근데 왜 둘만 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깜깜했고 공기는 서늘했으며 청량리역은 북적였다. 낯선 기차역 한가운데 그 공간에서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람(의미 부여) 그 오빠를 만났고 어쩐지 둘은 어색하게 기차에 올랐다.
초록담쟁이 이수희작가의 엽서
아마도 겨울이었나 보다. 무궁화호는 오래가야 했고 무궁화호는 이러라고(?) 천천히 가나보다 무박 1일이니 새벽이었을 거다. 그의 어깨는 넓었고 내 머리는 피곤해서 점점 그의 어깨로.......
사실 안 피곤했다. 피곤은 무슨, 손을 잡을 수가 있나 맨 정신으로 기댈 수가 있나, 아무 사이도 아니었던 내가 할 수 있는 건 자는 척뿐. 더 이상 나눌 대화도 없고 어색하지 않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던..
근데 여기서 드는 의문점, 그 사람도 나한테 관심 있었던 거 맞죠? 그죠? 이제 와서 왜 이래.
연애 경험이 1도 없었던 나는 그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그의 태도는 확실하지 않았고 고백할 만큼 그리고 혹시 고백했다 차여도 괜찮을 만큼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건지 확신이 없었다. 살랑살랑 호감, 썸 딱 그 정도. 괜히 말했다가 어색해지기만 하면 어떡하지, 나는 겁이 많았다.
일단 고개를 떨구는 데 성공했다. 됐어 나이스. 자연스러웠어. 떨군 곳에 마침(?) 그의 어깨가 있었고 한두 시간? 두어 시간? 그 자세 그대로 목적지까지 갔다. 그도 눈을 감았던 걸로 안다. 그는 잠이 들었었을까 그리고 알았을까, 내가 안 자는 걸. 아니 나뿐 아닐 거야. 새벽인지 밤인지 칠흑 같던 창밖과 눈부셨던 전등 불빛, 어쩐지 후끈했던 실내공기와 열차 소음만 들리던 기차 안. 그중 누구도 잠든 사람 없었으리라.
면회 온 우리 둘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던 동아리 선배, 아무 사이 아니라며 손사래 치던 우리 둘
갑자기 불쑥 떠오른 스무 살의 설렘이 미소 짓게 만드는 오늘이다.
내 브런치 글을 눈앞에 들이밀어도 안 읽는 남편 덕에 스무 살의 추억 소환.
걔나 얘나(?) 무뚝뚝하긴 마찬가지. 난 무뚝뚝이를 좋아하나 봐.
진중하니 무뚝뚝이만의 매력이 있다. 딴 남자 이야기 끝 ~
휴. 수위 잘 지켰다.
[ 당신과 함께 ] 잔디어 글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