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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Jan 05. 2024

발 주물러 주는 아들

졸업하는 내 아들

아들의 졸업식이다.

아들은 3년 간의 중학교 생활을 마치고 올해 고등학생이 된다.

남편과 나는 휴가를 냈다.

우리 부부는 졸업식 날 과연 아들이 점심을 우리와 먹어 줄지 아닐지 궁금해하고 있었. 가족들과 식사를 꺼려하는 아들은 절대 아니지만 특별한 날이니 만큼 아들이 만약 졸업식 후 점심시간을 친구들과 보내겠다고 한다면 쿨하게 보내주기로 다짐했다. 아들이 우리와 밥을 먹어줄 가능성을 굳이 따져보자면 한 30프로 정도? 

성인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남성상 중 하나인 친구 많고, 친구 좋아하는 남자가 바로 내 아들이다.


졸업식 하루 전 저녁 식사 시간

남편이 아들에게 물었다.

"졸업식 날 뭐 할 거야?"

아들의 대답은

"가족들이랑 점심 먹어야지."


주방에서 계란 프라이를 뒤집던 난 예상 밖의 아들의 대답에

깜짝 놀라 남편을 보고 말했다.

"오빠 쟤가 우리랑 밥 먹어준대."

마치  점심을 혼자 먹던 외톨이에게 밥을 같이 먹자고 말해주는 친구가 나타난 듯 그렇게 놀라며 말이다.


아들과 나는 몇 년간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사춘기라는 미명 하에 요란한 시간들을 보낸 아들은 모질지 못한 여린 아이다.

아들의 여린 성격이 본인의 긴 인생에서 장점이 될지 단점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엄마인 내게 만큼은 장점이었다.


얼마 전 기숙형 학원에 들어가서 당분간 만나지 못할 친구와 시간을 보낸다고 조금 늦는다는 연락을 해 온 아들에게 난 괜히 화가 났다.

아들의 친구들은 모두 고등 준비에 열심히 인 것 같은데 내 아들은 도통 학업에는 흥미가 없다. 답답한 마음에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친구는 어느 학원 기숙사 가는데?"

라는 나의 물음에

"내가 그것까지 어떻게 알아."

라고 답하는 아들

"넌 친구가 어느 학원 가는지도 몰라?"

라며 언짢은 듯 괜히 언성을 높이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뒤 아들은 다시 내게 전화를 해 왔다.

"엄마, 숭숭이 신신이라는 기숙 학원 간대. 이제 됐지?"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상하는 지나치게 소심한 엄마를 둔 덕에 마음 약한 아들은 이렇게 알게 모르게 나를 달래는 신세가 되었다.




동물들에게는 습관이 되어 버린 성질인 습성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 집 귀여운 반려견도 조상이 늑대인 만큼 사냥 본능이 남아 있다. 그래서 뭐든 물고 흔들어 대고 공을 던지면 공이 떨어진 곳까지 전력질주 하는 습성이 있다.

사춘기인 아들 역시 마치 한 마리 거친 동물과도 같았지만 오래전부터 본인이 하던 행동의 습성이 몸에 배어 있었.


아들은 내게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본인의 활약상을 말해준다던가 , 내 앞에서 유행하는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기도 했다. 또 재미있는 영상이 있으면 나를 불러 보여 주곤 했다.

난 그럴 때마다 재미가 없어도 아주 재미있는 척 웃어주곤 한다.


아들과 난 싸울 땐 불같이 싸우다가도 아들이 사 오는 아메리카노 한잔에 풀어지기도 하며 여전히 격동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방문 닫고, 입도 닫고. 마음도 닫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하며 아들의 흐느적거리는 춤사위에 웃음으로 답하곤 한다.


여느 처럼 체육관에 갔다 온 아들은 누워있던 내 앞에서 그날 연습한 손기술과 발기술을 입으로 휙휙 소리를 내며 보여 주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라는 영화에서

북한 최정예 특수 부대 출신의 남파 간첩 원류환 앞에서 자기만 믿으라며 폼을 잡고 원투 킥을 날리는 백수 형 두석이 생각났다.


누워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난 웃으며

"1호야 엄마 오늘 너무 피곤한데 발 좀 주물러죠."

아들은 이내 내 발 옆으로 와 앉아 내 발을 꾹꾹 누르며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들은 어릴 적부터 한 번씩 내 발마사지 요구에 순순히 응해주곤 했던 습성이 남은 건지 그날도 발마사지를 해 주었다. 나보다 훨씬  아들의 손이지만 내게는 아직 조막손 느낌이다. 남자치고 가늘고 긴 손가락을 가진 아들이 손으로 해주는  발마사지에 기분이 좋았지만 못난 발을 내민 내가 이내 부끄럽기도 해서  "이제 됐어"라고 그만하길 요청했다. 사춘기 아들에게 발마사지를 받는 기분은 황송할 따름이었다.

매몰차게 엄마의 발마사지 요구를 거절할 만도 한데 아들은 엄마의 나이 든 발을 그렇게 주물러 주었다.


오늘은 아들의 졸업을 맞아 죽이니 살리니 하며 싸우던 기억 말고 좋았던 것만 이렇게 기록해 본다.


언제가 아들이 이 글을 본다면

아들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도 모두 고마워했던 엄마를 기억해 주길 바란다.


졸업 축하한다. 내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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