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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Jan 12. 2024

음식은 정성보다 맛

치킨마요의 배신-똥손의 요리

나의 아들 둘은 같은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애석하게도 그 말은 방학 역시 같은 날에 시작해 같은 날에 끝난다는 것을 말한다.

그날은 무려 55일간의 겨울 방학의 시작이었다.

조용한 암자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밥과 직장에 밀려 고개도 못 든 채 사그라지고 그렇게 자동으로 돌밥(돌아서면 밥 차리는 시간이라는 속어) 신세가 되었다.


오전에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퇴근 후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어제 먹다 남은 치킨으로 치킨마요 덮밥을 할 참이었다.

또 일주일 치 아이들 간식과 반찬거리 이것저것을 장을 봐서 양손 가득 들고 낑낑거리며 집까지 왔다.

늘 그렇듯 퇴근 후 어디 한 곳이라도 들르게 되면 식사 시간이 늦어지기 마련이다. 장 본 물건들 중 치킨마요덮밥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들만 급하게 쏙쏙 꺼내 비장하게 양파 썰기를 시작했다. 

양파를 기름팬에 볶다 찢어놓은 치킨을 투하한다.

시판되는 데리야끼 소스가 있으니 이미 반은 성공이라 생각했다.

프라이팬을 하나 더 꺼낸 후 보슬보슬 계란 스크램블도 만들었다

밥 위에 볶은 양파와 치킨을 올리고 마요 요리의 화룡점정인 마요네즈도 곁들였다.


그리고 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며 아들들을 불렀다.

마주 보고 식탁에 앉은 두 아들들은 내가 만든 치킨마요덮밥을 한술 뜬 후 앙상블로 질문을 해 대기 시작했다.

"밀키트야? 직접 만든 거야?"

아들들의 표정에서 이미 망한 요리라는 느낌이 뿜어져 나왔고 난 어떻게 대답을 해야 아들들이 이 요리를 다 먹도록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머리를 빠르게 굴렀다.

"직접 만들었어 근데 소스는 실패할까 봐 산 거야"

아들들은 내게 다시는 치킨마요덮밥을 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내가 만든 저녁 요리에서 숟가락을 빼기 시작했다.

"아빠처럼 아무거나 잘 먹어야지"라는 나의 말에

"응 아빠는 비염(실제로 비염이 없지만)"이라는 단답형 대답으로 배수진을 친 아들들에게 결국 만원을 걸었다.


"밥 다 먹으면 만원 줄게"


저 많은 밥을 버려서 낭비를 하는 것보다  내 주머니를  털리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나는 자본주의 논리에 입각해 그렇게 만원을 걸게 되었다.


만원에 눈이 먼 한 놈이 다시 숟가락을 들고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다. 정말 맛이 없는지 기계처럼 수저를 들고 밥을 떠서 입에 쑤셔 넣는다.

돈이 좋긴 좋구나!

남은 한 놈은 배가 불렀는지 그래도 못 먹겠다며 아침에 먹다 남은 된장찌개를 달라고 했다.


결국 힘겹게 밥그릇을 비워 낸 한 놈은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것 마냥 맛없는 치킨마요를 꾸역꾸역  먹고 만원을 얻어냈다. 


맛이 어땠냐고?

나쁘진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단지 약간 싱겁고 마요네즈가 과했던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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