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주 Jan 30. 2024

남편은 피구공

남편이 피구공이 된 사연

술에 취한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순간

가족들의 피구 게임이 시작한다.

이때 남편의 역할은 피구공이다.


2호에게 뽀뽀를 해 달라는 남편은

얼큰하게 취한 꼬인 혀로 뽀뽀를 해 줄 때까지 조르며 2호의 짜증을 유발한다.


비틀비틀 1호의 방으로 향한 남편은

"오늘 무슨 공부했어?"

라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던진다.

공부를 할리가 없는 1호가 임기응변에 나선다.

"자연의 섭리와 긍정문과 부정문..."

그 대답에 남편은 1호의 말을 한마디로 가로막고 나선다.

아주 얼토당토않은 라임을 곁들여 웃으라고 하는 말인지 맞고 싶어 하는 말인지 모를 한 문장을 던진다.

"네가 태어난 게 자연의 불합리다."


난 이번 주 금요일에 친정에 가서 자고 오겠노라며 아들들에게 말했었다. 1호는 급히 나를 쳐다보며 그날 꼭 아빠를 데려가라고 간절한 눈빛으로 사정을 한다.


그리고 다시 내 쪽으로 향한 남편이 묵직하고 술에 절은 발걸음을 옮기며 마누라를 찾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무시로 일관한다.

술에 세포들이 흠뻑 적셔진 남편은 지침이 없다.

자꾸 꼬인 혀로 질문을 해 댄다.

오늘 뭐 했냐? 병원에서는 뭐라드냐? 애들은 어땠냐? 돈 만원만 주면 안 되느냐?

내 대답은 단호하다.

빨리 들어가 자

만원을 주면 들어가 자겠단다.

결국 만원을 손에 쥐어 준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하나 더 남았다.


남편의 다음 상대는 바로 반려견 크림이이다.

남편은 크림이를 잡고 다시 계속 말을 건다.

왜 오줌을 바닥에 샀느냐? 코는 왜 씰룩거리냐? 등의 초현실적인 남편의 질문에 크림이는 몸을 버둥거리며 도망치기 바쁘다.


술 취한 남편은 가족 모두가 피하는 피구공 신세가 되어 방으로 들어가 잠이 든다.

우리 집 성실한 가장은 이렇게 한 번씩 피구공 신세가 된다.

들어가 자라구요






매거진의 이전글 가사도우미 처방이 내려졌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