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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Feb 07. 2024

효녀는 아니지만 엄마가 좋습니다.

자랑할 게 하나도 없는 딸이다.

학창 시절 성적도 고만고만했다.

결혼도 고만고만한 남자랑 했다.

고만고만한 자식을 낳아 기르고 고만고만한 벌이에 자식 걱정, 돈 걱정 ,건강 걱정 하며 사는 딸이다.

너무 고만고만 하니 내세울 것도 없고 용돈을 넉넉히 드려 호강을 시켜드린 적도 없다.

결론은 사전적 의미의 효녀는 더더욱 아니라는 뜻이다.


젊은 시절 엄마의 갱년기를 애써 못 본채 하며 그야말로 남부럽지 않은 청춘을 보냈다.

우둔한 딸은 그땐 몰랐다.

그 모든 게 엄마가 만들어 준 것임을..


결혼 후 자식을 낳아 기르며 인생 최대의 난제가 자식이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원래 엄마라는 말에도 울컥 눈물을 는 여린 사람이라 그런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어린아이처럼 엄마를 찾게 되었다.


지인들과 함께 간 맛집 음식을 한 술 뜨는 순간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는 시골 사람이고 옛날 사람이다.

지인들과 맛집이나 경치 좋은 음식점을 찾아다니지도 않는다.

쌀밥에 나물 반찬이면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는 엄마는 아마 이런 맛집 음식을 못 먹어 봤을 것이다. 

난 며칠 또는 몇 주 후에라도 엄마에게 꼭 그 집 음식을 맛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난다.

내가 엄마와 함께 간 맛집의 음식이 모두 엄마의 입맛에 맞았던 건 아니다. 그럴 때마다 비싸니 맵니 짜니 등의 엄마의 날카로운 후기가 이어지지만 그 표현조차도 딸인 난 감사할 뿐이다.


신이 모든 곳에 있지 못해 엄마를 만들었다.

엄마를 만든 신이 대단하기보다

내게 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할 만큼 신 같은 존재인 엄마가 더 대단하다.

엄마는 농사꾼의 일 잘하는 딸이었고

몸과 마음을 바쳐 시댁에 충성한 며느리였으며

가정의 평화를 위해 애쓴 아내였고

자식에게는 신과 같은 엄마였다.


엄마와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이 내겐 너무나 소중하기에 몇 마디 귀여운 타박 정도는 고집을 부려 엄마를 속상하게 했던 내 어릴 적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후식으로 마신 달콤한 음료 한잔에 음 맛있네 를 말하며 활짝 웃는 엄마를 보며 다시 한번 다짐한다. 또 다른 핫플레이스에 엄마와 동행할 것을 말이다.



얼마 외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내고 엄마에게 슬픈 자유가 찾아왔다.

엄마는 생각하면 절절히 슬픈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가 안쓰럽고 불쌍하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늙고 병듦의 인생 뒤안길을 목격하며 그 속이 문들어진다.

내 미래가 될 엄마의 현재가 나는 이토록 마음이 쓰인다.

또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당부를 담은 엄마의 잔소리가 시전 된다.

절대 날 모신다는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마라. 늙고 기력 없어지면 아무도 못 돌본다.


자식 고생하는 꼴은 어느 부모도 보고 싶지 않은 듯 엄마도 아빠도 본인 때문에 자식이 마음 쓸까 세뇌시키듯 틈만 나면 저 소리를 해 댄다.

그때는 무조건 아빠까지 합세한다.


내가 온다는 소식에 엄마는 장을 봐서  반찬거리들을 가득 만들어 싸 놓으셨다.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엄마는 잘 아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인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수다를 떨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때부터 바빠질 딸의 모습을 말이다.


https://brunch.co.kr/@salsa7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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