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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Feb 10. 2024

피해 갈 수 없는 명절 스토리

숙연하고 초연해지고자 합니다.

지난 11월 시사에 못 가는 로 속상한 일이 있었지요. 그때 쓴 제사 이야기가 본의 아니게 히트를 치며 그렇게 브런치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명절 제사가 없어졌습니다.

욕먹은 보람이 있었던 거지요.


차례도 안 지내니 시동생과 달마다 무려 10만 원씩 거두는 곗돈으로 맛있는 거나 사 먹고 고된 노동은 멀리 할 수 있겠거니 생각했지요.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장은 봐 놓을 테니 와서 도란도란 만들어 먹자


전 순간 생각 합니다. 이제 내 뜻을 글 말고 말로도 펼쳐보자.

네? 만들어 먹자고요?

눈치 빠른 어머님은

아 힘들 것 같으면 사 먹자.

네 어머니 애 아빠한테 말해 볼게요.


점심 무렵에는 친정 식구들과 외할아버지가 계신 하늘 공원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남편에게 어머니와 통화 내용을 전달하였습니다. 당연히 외식에 동의할 줄 알아서 별생각 없이 그제야 말을 하게 된 거죠.

역시 당연히는 저만의 착각이었나 봅니다.

명절에 밖에서 사 먹을 데가 어디있냐며 단칼에 외식을 사양하는 남편을 집샤작가님께 고이 접어 던져버리고 싶었습니다. 

차려주는 밥을 먹고 커피를 달라고 할 남편을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지만 남편은 두 번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어머님께도 다시 이 사실을 알려드렸어요.

외식을 할 줄 알고 장을 안 봐놓으셨다는 어머니도 아들이 집에서 차려 먹자는데 도리가 없지요.

오전 중에 간단히 준비하시겠답니다.

어차피 집에서 만들어 먹을 거 시동생네와 매달 거금 내서 모으는 곗돈 이번에는 쓸 일도 없는데 십만 원씩 각 집 나눠 쓰자고 했다가 또 한 번 욕을 먹었습니다.

또 잊었네요. 돌머리인가 봅니다.

남편은 원칙주의자라서 본인의 원칙에 어긋나는 제 돌발 행동을 극도로 싫어하지요. 곗돈을 공동의 목적 외 생활비로 나눠 쓰는 용도로 유용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원칙주의자 란 것을 잊었네요.

십만 원 정도 나눠 쓰자는 거 남자들이 뭐라 하겠어요 라던 동서에게도 이 사실을 전하고 하늘 한번 반려견 한번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낮에 다녀온 하늘 공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유골함이 있는 추모관은 히터를 틀어 놓아 따뜻했어요. 춥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요 근래 많은 죽음들을 만났습니다.

명을 다해 가신 외할아버지부터

대학시절 한 순간을 같이 했던 선배님

고모할머니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애석한 지인들

그리고 그날 바로 옆 화장장에서 한 줌의 재로 돌아갔을 지인의 남편까지


삶과 죽음이 함께 있는 그곳에 가면 숙연해집니다.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지요.

모든 이의 마지막은 죽음으로 귀결되니 죽음의 과정이 어떻듯 그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집니다.

가끔은 그 평등이 억울하기도 합니다. 죽음에도 선인과 악인의 차이를 두면 어떻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럼 모두 착하게 살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런 일은 없습니다. 한 줌의 재로 변하는 순간만큼은 다 똑같아지니 그러고 보면

삶도 죽음도 거대한 자연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늘 하루 잘 살아 보는 거 말고는 없는  같네요.

그렇다면 지금 제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에  소중한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살다 보면 결국 모든 문제는 내 안에 있는 것이고 그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관계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들 역시 그 원인은 모두 선택에 기인한 것이니 누구를 탓하기도 뭣하지요.


낮에 다녀온 하늘 공원을 생각하며 

다시 하늘 한번 보고 반려견 한번 보았습니다.

급히 마트와 쿠팡 새벽 배송을 이용해 빈손이 아닌 나도 재료를 준비했음을 알리기 위한 성의도 보였습니다. 

곗돈에서 나누고 싶었던 그깟 십만 원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삽니다.

다시 한번 초연해지고자 노력하는 명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요란한 마음 잡도리 하고 또 가면 잘 먹고 재미있게 잘 지내다 옵니다.


독자님들도 모두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제사,그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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