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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Feb 20. 2024

그날의 본인 확인

그날의 결심

***시험감독을 종종 맡는다.

보통 교사들의 영역인 ***시험 감독을 강사인 나도 운 좋게 한 번씩 맡곤 한다.


그날 내가 맡은 시험장 응시생들은 모두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중반의 나이로 시험을 치러야 할 충분한 명분이 있어 보이는 진지한 눈빛을 가졌다.


나는 늘 하던 대로 방송 시간을 잘 피해서

주의 사항 몇 가지를 신속하게 일러준다.

전자 기기 소지 금지

예비 마킹 금지

수정 테이프 사용 가능(감독관에게 빌려도 됨)

조기 퇴실 시간 전달 


그리고 시간에 맞춰 응시생의 본인 확인을 해야 한다.

본인 확인은 대리 시험 방지를 위해 철저히 해야 하는 감독관의 의무이지만 얼굴과 사진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 대조해야 하는 민망함도 있다. 하지만 절차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수험표, 신분증, 실물 대조 순으로 본인 확인을 한다.


기술의 발달로 증명사진과 실물의 차이가 조금씩 나는데 유독 심한 사람이 있다.

오늘 내가 감독관을 맡은 고사장 응시생 중 한 명이 그랬다. 오른쪽, 왼쪽, 정면으로 봐도 실물과 사진이 너무 다르다.

분명 신분증과 수험표 사진은 동일한데 실물은 딴 사람이다.

사진 속 얼굴은 양가규순데 실물은 밤샘 공부를  것이 확실한 얼굴이다.


이럴 땐 방법이 있다. 얼굴의 특징을 찾아내야 한다.

얼굴 윤곽이나 피부색 등을 보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신분증과 실물을 번갈아 보고 갸우뚱하게 만드는 얼굴 사진은 모두 윤곽은 갸름한 계란형이고 피부색은 우유빛깔의 그 우유이 때문이다.


난 보통 점을 먼저 찾고 다음으로 콧볼을 본다. 

다행인 건지 수험자의 얼굴 왼쪽에 점이 있었다.

점을 확인하려 수험표 사진을 다시 보았다. 까만 점이 사진 속에 꼭 있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편하게 감독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사진 속에는 점은커녕 점 사촌도 보이질 않았. 동일인이 맞다면  포토샵이 얼굴을 지나갈 때 검은 점 따윈 데려간 모양이다.


시험 치기 전에 감독관의 집요한 본인 확인 절차로

정신이 사나워서 시험을 망쳤다는 민원이라도 들어오면 곤란하니 일단 일보 후퇴했다.


난 생각했다. 부정행위를 하려고 작정한 사람이라면 사진에는 없는 얼굴 점을 그대로 노출하여 무방비상태로 오진 않았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좀 더 집요하게 동일인임을 확인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시험은 시작 됐고 난 그 수험생을 계속 지켰보았다.

평온했고 불안감을 찾아볼 수 없는 그녀는 단지 피곤해 보이기만 했고 밤샘 공부에 지쳤을 것이라

내 마음대로 생각하니 나름 번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시험 종료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쯤 마킹을 열심히 하던 그녀는 수정 테이프가 필요했는지 나를 향해 손을 들었다.

난 이때 다 싶어 그녀에게 수정 테이프를 건네며 수험표를 살짝 가져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얼굴과 수험표 사진을 대조하기 시작했다.

찾았다. 동일인임을 코볼 모양이 같았다. 커다란 안경 속에 가려진 눈매도 비슷했다.

그리고 나는 내 역할에 충실했음에 안도했다.

동일임을 확인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디지털은 우리 생활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고

사진 속 내 얼굴도 변화시켰다.

비단 신분 확인 절차에 곤란을 겪는 사진의 주인공이 그 응시생뿐이겠는가?

부끄럽지만 나도 마찬가지..


유지 보수를 위한 적잖은 돈을 요구하는 얼굴에서

요즘 유행하는 AI가 만든 내 얼굴보고 있으면 

이 얼굴로 한번 살아 보면 소원이 없겠다 싶다.

40대 중반 이제 셀카를 백장 찍어도 내놓을만한 사진 한 장 건지기 힘든 몰골은

신분 확인이고 뭐고 간에 예쁘고 싶다.


자연스럽게 나이 들고 싶다는 말을 누가 먼저 했는지 모르겠으나 분명 그들은 자연스럽게 예쁘고 싶어 얼굴에 엄청난 투자를 했으리라...

결국 자연스럽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은 있어도

못 생기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니 가상의 내 얼굴로 대리 만족이라도 해 보고 싶고 증명사진은 꼭 포토샵의 손길을 받아 주름이라도 없애고 싶다.


너도 나도 다 포기할 수 없는 포토샵의 능력

거부할 수 없는 AI속 가상의 아름다운 나


그날 결심했다.

시험장에는 꼭 풀메이컵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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