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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Feb 18. 2024

몇 걸음 걸어 보셨나요?

너무의 폐해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빠 나 몸이 산산조각   같아.


이유는 이랬다.

나는 그날 남편과 계획에 없던 트레킹을 가게 되었다. 원래 둘째 아들의 옷을 사러 근처 아울렛에 가기로 했지만 당일 날 아침 아들은 귀찮아서 안 가겠다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시 누워버렸다. 


이유야 어쨌든 고 귀여운 입에서 절약 정신으로 둔갑한 안 가겠다는 흘러나오니 오메 예쁜 내 새끼가 자동으로 발사되었다.


여하튼 남편과 나는 그렇게 트레킹을 가게 된 것이다.

떡진 머리는 모자로 살포시 가려주고

내 눈은 소중하니 선글라스 정도는 착용해 주었다. 아침도 거른 채 물한병과 한라봉 한 개를 까서 챙겨 들고 그렇게 걷기를 시작했다.


남편은 나와 로또만큼이나 맞는 구석이 없다. 그래도 연애할 때는 나와 반대로 강한 남편의 성격이 마음에 들었고 그런 남편이 곁에 있어 든든했다.

하지만 연애할 장점은 결혼 후에 대부분 단점이 된다.

그나마 맞는 구석이 하나 있다면 트레킹 가자는 남편의 말에 내가 바로 오케이를 날린다는 것이다.

코로나 직전까지 근 10년간 남편과 수영을 했다.

우리가 부부라는 사실을 수영장 클래스에 알리지 않았기에 남편은 내게 치근덕거리는 이상한 아재로 찍혀 있었지만 몸을 움직여 땀을 내는 것을 좋아하는 건 남편과 나의 공통점이다.


낮은 산에 조성된 트레킹 코스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한 구를 다 두르고 있는데 적당히 걷다가  원하는 출구로 나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우린 그날만큼 긴 시간을 낼 수 있을 때도 흔치 않아 계속 걷기로 했다.

쉼터에서 껍질 까서 봉지에 담아 간 한라봉을 나눠 먹으며 점심으로 베트남 쌀국수를 먹기로 했다.

슬슬 지쳐 갔지만 우린 식당까지 다시 걸었고 

배가 고파 다리가 후들거리는지

너무 걸어 다리가 후들거리는지

모를 때쯤 식당에 도착했다.


허기 진 초췌한 얼굴로 주방에 시선을 고정한  얼마 후 주문한 고기쌀국수와 분짜라는 베트남 요리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순간을 기다렸던 만큼 나와 남편은 젓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무료로 추가되는 면까지 종류별로 주문해 먹은 후

배가 불편해 오기 시작했다.

점심을 하게 먹기 전까지는 집에 돌아갈 때 내일의 출근을 위해서라도 택시를 이용하겠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접시를 다 비우고 무료로 추가한 면까지 해치우고 나니

소화가 안 되는 내 위장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집까지 걸어야만 했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어느새 위를 가득 채운 국수면에 남편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한 후 나의 휴대폰 만보기 앱에는  28258이라는 경이로운 숫자가 찍혀 있었다.

이후에 줄곧 입력값이 5분에 한 번씩 아이고 소리를 내도록 설계된 로봇이 되었다.




너무 -지나치다는 뜻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너무 많이 걸었다.

아침을 굶어 너무 배가 고파 과하게 먹었다.

무료로 추가되는 국수 면이 공짜라고 너무 많이 추가했다.

걷고 나면 몸이 개운 해야 하는데 너무 걷고 너무 먹은 탓에 반대가 되었다.

집에 오니 너무 지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복합적 너무의 공격에 난 속수무책으로 당한 후 끙끙 앓다 다음날 불쾌한 아침을 맞았다.

그리고 휴일 이후 직장에서 아프다고 인상을 쓰고 있는 재수 없는 진상이 되었다.



세상사 문제들 중 너무 때문에 생겨나는 폐해들이 많다. 


엄마가 싫어하는 8가지도 모두 너무 때문이다.

너무 나갈 때 또는 안 나갈 때

너무 먹을 때 또는 안 먹을 때

너무 많이 잘 때 또는 안 잘 때

너무 말대답할 때 또는 대답 안 할 때


우리는 너무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걸 익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선에서 요령껏 조절하는 능력을 상실하곤 한다.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는 지점에서 과해 지는 경향이 있으니 그럴 때마다 이성의 끈을 잘 붙들어 과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게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식, 과음, 과소비, 과욕, 과잉

과-알면서도 결국 붙이고 나서야 후회하는 이 접두사를 사는 내내 경계하며 몸과 마음의 평안을 얻어야겠다.


독자님들은 몇 걸음 걸어 보셨나요?


만보 걷기가 유행인데

그 만보가 달리 만보가 아닌가 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만보만 걸으라고 만보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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