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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Feb 23. 2024

삐꺽 대는 몸과 간절한 글쓰기

약해빠진 내 눈

그때는 내 나이 25세

난 자부한다.  시절 내 청춘은

새벽이슬을 머금은 나팔꽃 보다 더 싱그러웠고

핑크빛 주홍빛 해 질 녘 노을보다 값졌다.

적고 보니 묘사가 부끄러울 만큼 진부하지만

다시 오지 않을 그 시절은 지금 생각해 보면 부러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었던 유일 무이한 삶의  순간이었다.

내가 10을 잘 살 수 있었는데 8을 살고 있다 치면 그때 남부럽지 않은 시절을 보낸 것이 2를 깎아 먹은 이유가 될 정도였으니...


어느 날은 밤을 새우고 놀았다.

그때가 여름이었던지라

새벽에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회사 야유회를 가야만 했다. 

엄마가 화장실 문을 두드린다. 똑똑

"이렇게 일찍 나가나?"

사실 밤샘 후 이제 들어와 또 나가요를 차마 말하지 못한 난 한숨도 자지 않고 회사 야유회에 가서 신나게 충성을 다 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밤샘 후 찾아오는 맹렬한 피곤함도 젊음이란 강적 앞에서는 위세를 떨칠 수 없었다.



그로부터 20년 후

타고난 약골인 난 젊은 시절은 젊음을 무기로 버텨왔을지 몰라도 비루한 몸뚱이가 40대를 만나더니 몸이 여기저기 삐걱거리다 못해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40대에는 날아다녔다던데 내 40대는 이 병원 저 병원 도장 깨기를 하고 다니고 있는 지경이랄까

일단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유전적으로 잠재되어 있던 각종 질환이 아슬아슬하게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질환의 발생은 나를 몹시 당황케 했는데 그것은 40살에 진단받은 망막 박리라는 눈 질환이었다.


이 생소한 병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내 경우 근시로 인해 길어진 안구축이 점점 망막을 견인하며 안구 뒤쪽 망막이 찢어지는 질환이다.

박리가 진행되면 경우에 따라 수술이 필요하고 크든 작든 시력 상실도 각오해야 한다.


5년 전 박리가 이미 넓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다행히도 레이저 시술이 가능한 정도여서 박리된 부위 주변으로 레이저 박음질을 해 놓은 상태이다.

더 이상 다른 부분까지 박리가 진행되지 않도록 말이다.


얼마 전 레이저로 박음질해 놓은 안 쪽 병변 부위가 더 찢어졌다. 하필 해외여행 중 일이 벌어져 아이들에게 잊지 못한 추억을 선물 한 나는 눈이 나쁜 것이 병이라는 사실을 심각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문제가 생긴  평소와 다른 없는 출근길에서였다. 이번에도 다행히 레이저 해 놓은 안 쪽 병변이 더 찢어져서 문제가 생긴 거였지만 혈관을 물고 찢어지는 바람에 혈액과 부유물들이 눈 안에서 정체 없이 떠 다니며 내 시야를 가로막았다.

마치 모래 폭풍 안에서 앞을 봐야 하는 것 같은 답답함이 계속되었다.


두려웠지만 레이저 해 놓은 안쪽에서 생긴 병변이며 다행히 레이저 박음질이 다른 부위의 망막이 벗겨지는 것을 막아 주고 있으니 불편해도 그냥 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안도하였다. 하지만 문득문득  몰려드는 불안감에 순간 염세주의자가 되어 버렸다.


만약을 생각하며 상태가 나쁜 왼쪽 눈을 가리며 글을 써 보았다.

작가의 서랍 속에 마구마구 채워 넣어 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생각들을, 글 쓸 거리들을 두서없이 채워 넣었다.

불편은 했지만 가능한 것안도하면서 말이다.


즐기기에 바빠 집을 하숙집 드나들 듯했던 그 시절이 지나고 사회생활도 하고 출산과 육아라는 과정도 겪으며 남들 해보는 건 다 해 보며 살았다. 

이제 유흥에도 미련이 없고 음주는 젊은 시절 이미 간의 한계를 맛봤기에 더더욱 멀리하고 있다.


좋아하는 독서나 하며 글이나 쓰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지라

이렇게 한 번씩 병원을 다녀오면 글쓰기가 더 간절해진다.


다들 건강하세요. 눈 검사도 한 번씩 해 보시고요.

https://brunch.co.kr/@salsa7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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