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사에 못 가는 불성실한 며느리
의도치 않은 불참이 확실한데 혼난 며느리
곧 다가올 시사 때문에 아버님께 전화를 드리게 되었다.
시사란 사전적 의미로 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 지내는 제사
나의 시댁도 매해 빠짐없이 이 시사를 지낸다.
얼마 전 추석에 시부모님께 올해 시사가 11월 12일이라 들었다.
별 의심 없이 시사 예정인 날의 스케줄을 비워 놓았었고 날짜가 다가왔다.
아버님께 그날 시험이 있어 못 가는 남편을 대신해
나 혼자라도 가겠노라 생각하고 연락을 드렸다.
신랑도 없이 먼 시골까지 시사 지내러 혼자 오겠다는 며느리의 마음이 가상하여 ‘안 와도 된다’라는 아버님의 한마디를 기대하며 통화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시사는 내가 아는 12일이 아니었다. 26일이었다.
그럼 왜 아버님 어머님은 추석에 12일이 시사라 말씀하신 건지...
여하튼 26일은 부부 동반 모임이 있는 날
시사 날짜를 피해 잡은 날인데 여러 가지 이유로 절대 빠질 수 없는 모임이고 결론은 그날 시사는 나도 신랑도 못 가는 것이다.
‘아버님 어쩌죠? 그날 저랑 애 아빠 둘 다 못 가요’
차마 모임이 있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때부터 기분이 상하신 어머니는 날 선 목소리로
내 심박수를 자동으로 올리기 시작하셨다.
‘신랑이 못 오면 니라도 와야지’ ‘날짜가 이렇게 남았는데 못 오는 게 말이 되냐'
그 뒤에 다양한 불편한 문장들이 내 귀에 박혔다.
오랜 전부터 생각해 오던 내 예상은 적중했다. 시댁은 절하며 조상을 기릴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일할 노동력이 필요한 조직이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며느리를 알게 모르게 하대하는
이 몹쓸 분위기를 이번에 처음으로 느껴 본 것은 물론 아니다.
사실 나 역시 일면식도 없는 남편의 조상들 제사를 지내는 것은 퍽 편한 일은 아니다.
다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 제사를 나 몰라라 하는 며느리를 보는 불편한 시선 때문에 또 조상을 잘 모셔야 복을 받는다는 제사 추종론자 등의 주장 때문에 마지못해 하는 희생 정도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답이 없는 이 상황에 ‘어떡하죠?’를 반복하는 나와 ‘모임 날짜를 바꿔라’ '일은 누가 하니?
불만 섞인 호통으로 응수하시는 어머니 사이 어디쯤 난처한 아버님이 계셨고 결론이 지어지지 않은 채 통화가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