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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적여 봅니다
비데가 고장 났다.
시련에 대처하는 자세
by
송주
Jun 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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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데가 고장 난 날
난 화장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우리 집은 안방에만 비데가 있고 온 식구들이 다
큰 볼일을 안방 비데 위에서 해결한다.
그러다 보니 5년 만에 비데가 짧다면 짧은 명을 다 했다.
예상치 못한 비데의 고장은 일종의 갑자기 맞이하는 시련과 같은 것이었다.
급한 건 쾌변을 못한 상태에서 어설픈 뒤처리 후 화장실을 나가야 한다는 것이고
안 급한 것은 더 이상 용변 후 나를 따뜻하게 감싸줄 물줄기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 비데 없이 생활해야겠다 다짐하고 내 시선은 샤워 호스로 향했다.
내 엉덩이가 겪게 될 뜻밖의 시련에 당황했던 그 순간 오래전 결혼 준비 하던 때 일이 떠올랐다.
그 일
역시 내게 뜻밖의 시련이었기에...
남편과의 긴 연애 끝에 드디어 상견례를 하고 결혼 날짜를 잡았다. 하지만 그 날짜가 문제였다.
우리 집에서 택일한 날짜를 시댁에서 트집을 잡았고 결국 결혼이 성사되지 않았다.
소상히 밝히고 싶지만 내가 입을 열면 막장 드라마 80회 분량은 족히 나올 듯 싶어 내 손가락과 뇌가 겪을 피로도를 생각해 참아본다.
먼 훗날 드라마 소재로 아주 제격이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뇌 속 해마에 봉인할 예정이다.
그렇게 나의 결혼은 내 뜻대로 진행 되지 않았고 태풍을 맞고 좌초된 배처럼 표류하게 되었다.
엄마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라고 했다.
난 오빠가 불쌍해서 그리는 못한다고 했다.
시련은 이렇게 불시에 나를 덮친다.
시련이 닥쳤을 때 내 대처 자세는 보통
세
가지이다
.
1. 다른
대안을 찾거나
2. 정공법을
써 정면 돌파하거나
3.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세상이 무너지길 바라거나 셋 중 하나다.
안타깝게도 난 그 당시 세 번째 대처법을 선택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다 신세 한탄을 하길 반복했다. 그 와중에 지진까지 발생했고
지진
보다 내 현실이 더 가혹하다 느껴져
몽땅 망해라를 외치기도 했다.
그리고 일 년 반 후
그때 불쌍해서 못 헤어졌던 오빠는 결혼식과 동시에 남편이 되었고 여태껏 함께 살고 있다.
사는 내내 내가 더 불쌍한 듯한 느낌은 기분 탓이려니..
시련이 닥쳤을 때의 대처하는 자세는 중요하다.
볼일을 보던 중 비데가 고장 났을 때 급 다른 대안을 찾았다
.
급 파혼을 했을 때도 다른 대안을 찾았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한 번씩 궁금하다.
이제 와서 백투 더 패스트 할 수도 없지만
시련에 대처하는 자세 중 세 번째는 권하고 싶지 않다.
끼적여 봅니다 매거진에
격조 했던 것 같아
아무 글 대단치 해 봅니다.
편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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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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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며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쓰다 보면 길이 생길 것을 믿습니다. 세상 모든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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