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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May 17. 2024

미필적 고의의 진상

베스트 진상이 되는 길

쉬다 와서 아프다고 하면 베스트 진상


이라고 지인이 말한 적이 있다.

오늘 난 평소 부여받지 못하는 베스트라는 호칭을 진상 앞에 붙이게 되었다. 

놀다 와서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베스트 진상 직원(?)


보통 감기 몸살이 오기 전에 전조 증상이 있다.

신기하게도 같은 루틴으로 감기 몸살이 온다.

3월 , 11월 날씨가 애매하게 추울 때 어김없이 인후통을 시작으로 그렇게 감기 몸살은 몸뚱이를 침범한다.


잊을만하면 골골거리며 감기 몸살에 걸렸다는 딸을 보며 아부지는 답답한 듯 잔소리를 시전 하시곤 하는데 이번 감기 몸살의 아부지 잔소리는 바로 이거였다.

니 또 감기 걸맀나? 아이고 죽어야 걱정을 안 하지


태생이 허약하여 수시로 잔병치레를 하던 딸은 아이를 둘이나 낳고도 변함없이 자주 골골거리니 내 부모님 속이 터질 법도 하다.


목이 살짝 아프기 시작한다.

그러다 목이 급격히 아프면서 몸살이 동반된다.

미리 조치해도 진행을 막을 순 없다.

정해진 루트를 밟듯 증상이 시작되고 진행된다.

이 상태로 업을 위해 수업을 한다.

최대한 목에 부담되지 않도록 요령을 피워봐도

어김없이 목이 쉰다.

목소리가 안 나오고 괴롭다.

어떤 메커니즘을 통하는지는 모르나 늘 같은 단계를 거치던 내 감기 몸살은 올해 3월을 용케 건너뛰나 했더니 따뜻하고 바쁜 5월에 찾아왔다.


연속 이틀 저녁 약속 후 몸이 심상치 않더니 마지막 다소 격한 모임에 다녀온 후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소리가 80대 노인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목구멍에 불이 나는 것 같았다. Fire~~~


여기서 문제가 내 스케줄이 하나가 더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시댁 식구들과 예약해 놓은 워터파크에 가기로 한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급히 병원 진료를 보았지만 역시나 차도가 없고 워터파크 예약 날짜는 코 앞으로 다가왔다.


당일 아침 간신히 몸을 일으켜 워터파크로 출발했고 꽤나 고급스러운 물놀이장에 입성한 순간  감기가 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시댁 식구들의 걱정을 뒤로하며 밝은 얼굴로 신나게 정신없이 얼빠진 사람처럼 감탄사를 연발하며 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워터파크 물속에 계속 잠긴 것처럼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찢어질듯한 목구멍의 통증과 부은 얼굴은 그냥 봐도 실컷 놀다 아프다고 앓는 소리를 해댈 진상의 몰골이었다.

거기다 할배 한 분이 빙의된 듯한 목소리까지..


출근과 수업을 해내야 하는데 막막했다.

머리 감는 것을 포기하고 대충 묶은 후 출근을 했다.

아파서 수업에 못 간다는 말은 하기 싫었다.

더군다나 전날이 휴일이었는데 아프다고 휴강하면 누가 좋아할까?

자기 관리를 못하는 인상을 남기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미안해하며 수업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것이 싫었다.


코로나 전 열이 38도를 넘어갈 때도 수업을 진행하는 미련함을 보였다. 몸은 내가 아픈 건데 내가 아픈 것까지 이해시켜야 하는 상황이 싫어서 그냥 일했다.


막상 수업을 하려니 목소리가 안 나오고 힘이 들었다. 집중은커녕 마치고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상상하며 버티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동료 선생님이 타 주는 따뜻한 자몽차 한잔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뭉클 올라왔다. 뭐 예쁘다고..


혈관에 약물 투여 없이는 내일도 문제라 생각되어

퇴근 후 응급실로 바로 향했다.


이번 주말에는 곧 죽어도 방콕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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