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주 Jun 17. 2024

물놀이 하는 반려견을 보며

때가 있다.

작년까지 크림이를 물가에 데려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 녀석 목욕을 싫어하더니 물 자체를 싫어하는구나 생각했다.

다른 개들처럼 물속에서 첨벙거리는 크림이를 보고 싶었는데 작년 여름까지는 한낱 내 욕심으로

끝나 버렸다.


올여름

에어컨을 틀어 달라는 아들의 요구를 전기세 운운하며 무시해 오고 있는 매정한 애미는 반려견 크림이가 더위에 힘들까 싶어 노심초사 에어컨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는 중이다.


자주 가는 지역 애견 운동장에 견수영장이 개장을 했다.

전에 언급한 적이 있는데 시에서 운영하는 애견운동장은 지역구 주민에게 단돈 천 원의 초저렴한 입장료를 받는다.


그러면서 주차도 공짜고 시간은 무제한이고 서머시즌에는 수영장까지 이용할 수 있다.

사람 수영장은 아니고 개 수영장이다.

이곳은 견들의 낙원이자 견주들의 개미지옥 같은 곳이다. 한번 입장하면 견(犬)과 주(主) 중 한쪽이 피곤해 뻗어야 나올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사실 늘 조금 놀다 바쁘다고 휘리릭 나오긴 하지만 그만큼 시간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거기 모인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재미있어서 집에 오기 싫을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며칠 전 날이 더워 헥헥거리던 크림이가 수영장 입구에서 망설이다 제 발로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간 데려가 물속에 살짝 담가 놓으면 마치 못 올 곳을 온 것처럼 뛰어나가기 바빴던 크림이가 그것도 제 발로 물속으로 들어가 유유자적 놀고 있다니...


더 재미있는 건 쉬가 마려울 땐 밖에 나와 쉬를 싸고 들어 간다는 사실이다.

팔불출 견주는 이런 행동이 마치 내 개만이 하는 특별한 매너인양 젠틀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영장 타일 위에 걸터앉아 크림이 노는 걸 지켜보다 문득 모든 것이 때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 있고

죽어라 애를 써도 안 되는 일이 있다.

자연스레 이루어진 일에 기뻐 날뛰던 순간도 지나고 나면 손에 쥔 모래알처럼 어느새 흔적만 남을 때도 있다.

애써 마음을 졸여 봤자 안되든 되든 둘 중 하나인데 다 알면서도 내려놓기 쉽지 않다. 

어찌 보알면서도 스스로를 괴롭히는 나는  아둔한 인간이다.


이렇게 물속에서 잘 놀 줄 알았다면

작년 여름 싫다는데 억지로 물에 발 담그게 하지 말 것을...

다 때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려견을 통해 보는 외모 지상주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