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주 Jul 20. 2024

아들과 보드게임

판돈은 이천 원 가치는 무한대

아들이 금요일 저녁 류미큐브를 하자며 게임박스를 들고 왔다. 아들의 손에는 돈 이천 원이 들려 있었다.

"이거 걸고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아들


판돈이 크다. 한판에 이천 원

둘이 하면 어차피 시간이 오래 걸려 한 판 밖에 못 할 것이기도 하고

내가 아들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콜을 외쳤다.

14장씩 네모 패를 나눠 갖고 게임을 시작했다.


15살인 둘째 아들은 나와 성격이 많이 닮았다.

아들은 감성이 풍부해서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보다가도 가슴이 벅차오를 때가 많은 아이다.

큰 아들과 내가 다툰 날이면 눈물을 흘리며 나의 안위를 묻곤 하던 착한 아들이다.

형의 권위에 도전하는 법도 없다. 첫째도 동생의 순한 성격을 알기에 친절하게 대해 주는 편이라 형제의 난 같은 건 다행히 존재하지 않는다.


아들들은 둘 다 버릇처럼 학교에서의 썰들을 풀어낸다. 가끔은 가방을 벗기도 전에 입을 털어대니 버릇이 분명해 보인다.

차이점이라면 첫째는 간단하게 풀어내고 둘째는 별 내용이 없을지라도 온갖 액션과 성대모사를 섞어가며 풀어낸다는 것이다.

오늘도 합창제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었다.


아들들은 남편 보다 나를 더 편하게 생각한다.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인 아빠는 목소리부터 우렁차다 못해 크다. 큰 목소리는 늘 화가 나 있는 듯한 톤이 되는 게 문제다. 그래서인지 아들들은 내 옆에 붙어서 이것저것 말하기를 좋아하는데 특히 둘째가 더 그렇다.


어릴 적 친정 엄마는 늘 나와 동생을 옆에 끼고 다니셨다. 우리 남매가 쫑알거리는 것을 항상 잘 들어주셨다. 내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엄마 앞에서 읊어 대도 귀찮은 내색 없이 잘 배워 왔다며 웃어 주셨고 내가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해도 다 받아 주셨다. 어떤 날은 간지럼을 태워주기도 하고 스카이 콩콩 탈 수 있게 잡아 주기도 하셨다. 장에 가면 핫도그도 하나씩 우리 남매 손에 쥐어 주셨고 나와 동생은 케첩과 설탕을 입 옆에 가득 묻히면서 맛있게 먹고 행복해했다.

때가 되면 동생과 나를 번갈아 눕혀 귀를 파주기도 하셨는데 얼마나 시원했는지 모른다.

엄마는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나도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아들들 말에 끄덕끄덕 맞장구 쳐주며 호응해 준다.

피곤한 시간이었지만 아들의 보드게임 도전장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고스톱판 버금가는 리액션을 연출해 가며 전력을 다 했다.

결과는 패 하나 차이로 내가 졌다.

나는 이천 원을 아들 통장으로 보내주고 귀까지 파 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시원해서 조금만 더를 외치는 아들을 보니 옛날 엄마 무릎에 누워 귀지 제거 서비스를 받던 나와 많이 닮았다.

가끔은 아들과 서로서로 귀를 파주기도 한다. 오늘은 류미큐브 때문에 허리가 아파 자야 될 것 같아서 거절했다. 


아들들도 내 나이가 되었을 때 나를 따뜻했던 엄마로 기억해 주면 좋겠다.

이천 원 판돈의 보드 게임이 먼 훗날 아들에게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추억이 되었길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퇴고 하다 백골 진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