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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Aug 12. 2024

기똥차게 맛있는 막걸리

핑크베이지 색 아름다운 막걸리

사회생활을 하는 40대 부부는 나름의 위치에서 늘 바쁘기 마련이다.

험한 세상 끈끈한 동지애를 가지고 살아내야 하는 운명 공동체이지만 평일에는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없을 때도 많다.

남편은 평일에 내가 자기에게 전화를 걸어 "오빠"라며 입을 떼기 시작하면 간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한다.

그만큼 어떤 이슈가 없으면 불필요한 안부 전화 없이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이 남편과 나라고 굳이 말하고 싶다.

그래도 주말은 한집에서 별일이 없으면 함께 하는 편이다. 함께 하다 함께 싸우기도 하고 뭐 그러다 씩씩거리며 커피 한잔 하기도 하며 남들 하는 거 다 하면서 그렇게 살고 있다.


일요일 오후 남편과 근처 대형 마트로 장을 보러 갔다.

나와 남편은 사람들로 북적 되는 마트 안에서 필요한 물건을 빠르게 카트에 담기 시작했다.

내가 잠시 오일류를 고르는 중 사라졌던 남편이 웃고 있는 거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진격의 거인 덕질 중인데 자꾸만 그 속의 거인과 남편이 오버랩이 된다.)

카트 안에는 병문안 갈 때나 들고 갈 법한 아니 요즘은 병문안 갈 때도 안 들고 간다는 토마토주스가 두 박스나 들어 있었다.

또 쓸데없는 걸 샀지 싶어 넌지시 남편에게 누가 아프냐고 물었지만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막걸리까지 몇 병 담은 남편은 집으로 함께 돌아온 후 주전자를 좀 꺼내 달라고 했다.


장 본 짐을 풀고 난 후 남편이 말했다.

"요즘 골프장에서는 이렇게 먹어.

처음에 맛보고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어.

너도 먹어 보면 깜짝 놀랄걸"

남편의 표정은 의미 심장 하다 못해 확신에 차 있었다. 이거 마시면 우리 오늘부터 일일이다.

뭐 이런 표정이라고나 할까?


남편은 주전자에 막걸리 두병과 토마토 주스 한 병을 넣고 두 가지 액체를 섞었다. 전문 용어로 말았다. 그리고 내게 먼저 한잔을 부어 주었다.

스킨색 막걸리에 빨간 토마토 주스가 들어가니 은은한 핑크빛이 도는 베이지 색의 아름다운 막걸리가 되었다.

나는 무슨 맛일까 궁금해 얼른 모금을 들이켰다.


자동으로 구겨지는 내 얼굴과 절로 나오는 도리도리 뱅뱅을 보더니 놀란 남편도 조제한 막걸리를 급하게 맛보았다.


"어? 이 맛이 아닌데?

스테비아를 사서 그런가?

가야농장 브랜드를 사야 했나?

두 병을 넣어야 하는 건가?"


남편은 이 맛이 아니었다며 조제에 실패한 원인을 혼자 요목 조목 분석 하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똥차게 맛있다는 그 막걸리는 기똥차게 맛없는 막걸리로 판명이 나 버렸다.


큰 기대를 한 건 아니다. 남편은 먹는 것에 특화된 사람이고 만드는 것에는 전혀 소질이 없다.

남자든 여자든 먹고 싶은 음식은 손수 해 먹을 수 있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남편도 그렇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내게도 맛 보여 주고 싶어 한다. 부부는 열 가지 중에 한 가지만 좋아도 살 수 있다. 나처럼 말이다. (쓰고 나니 욕인지 칭찬인지 나도 모르겠다.)


남편의 음식 만드는 솜씨가 토마토 막걸리로 또 한 번 증명된 듯해서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도 남편의 마음을 알기에 홀짝홀짝 두 잔 꽉 채워 마셨다.


토마토 막걸리를 둘이서 나눠 먹고 남편은 중얼거렸다. 

"원 플러스 원인데 하나는 망고로 살걸.

저거 언제 다 먹지? 명절에 하나 들고 갈까?"


그리고 나는 궁금했다.

기똥차게 맛있는 막걸리는 도대체 무슨 맛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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