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 이전 나는 단순히 아이돌을 좋아하던 여고생이었다. 그것이 내 최초의 덕질이었다면 그렇다. 사진을 모으고 앨범이 나올 때마다 구매 후 듣고 또 들었다.
멤버들의 신상파악은 기본이었고 친구에게 이끌려 콘서트도 가봤다. 누군가를 보고 좋아서 흥분하며 소리를 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내가 아이돌 콘서트를 보러 간 것은 대단한 사건이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기억나는 건 함께 간 친구의 고함 소리에 귀가 먹먹했던 것과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던것 정도다.
세월이 흘러 BTS가 나타났다.
내 두 번째 덕질이 시작 됐다. 무료했던 생활이 한순간 꿀렁이기 시작했다. 듣던모든 노래를 BTS곡으로 채우고 멤버들 영상을 수십 번 수백 번 돌려봤다. 가슴이 뛰고 설레었다. BTS는 무료한 일상에 나타난 무지개 같은 존재였다. 잡히진 않지만 보기만 해도 행복해졌다.
내 세 번째 덕질 대상은미국 드라마 워킹데드였다.
나는 미국 드라마와 한국 드라마를 통틀어도 워킹데드만큼 재미있는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다.
물론 내 취향이 로맨스 보다 스릴러나 좀비 호러물 쪽인 이유도 있다.
워킹데드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한 회가 끝나도 멈추기가 힘들었다. 결국 밤을 새우거나 새벽 동이 틀 때쯤 잠이 들곤 했다.나는 좀비 보다 더 좀비 같은 모습으로 변해일상을 이어 나갔었다.
덕질이 시작되면 나는 배우와 작가의 신상을 다 찾아본다. 또그들의 인터뷰와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모두 궁금하여 이곳저곳 헤집고 다니며공부하듯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뭐라도 됐지 싶다.
나의 네 번째 덕질이 시작되었다. 나는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를보지않던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진격의 거인.
대작 수작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아깝지 않을 이 작품 속 캐릭터와 스토리에 푹 빠져 들었다.또다시 시작된 덕질로 캐릭터들의 특징 파악은 물론 거인 계보도를 그려보며 스토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싶어졌다.
과거와 미래를 모두 보고 정해진 운명을 향해 갈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 에런예거(진격의 거인)의 고통이 내게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미카사에 의해최후를 맞는 씬에서 그만 눈물이 터져 버리며 덕후의 스멜을 심하게 풍기고 말았다.
진격의 거인은이야기를 잠시 놓치면 내용 파악에 곤란을 겪는 다소 어려운 애니메이션이다. 그 정도로 심오하고 복잡하다. 나는 이해 안 되는 부분들을 다시 돌려보기도 하고 유튜브로 찾아보기도 하며 완벽하게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이것이 진정한 덕질 아니겠는가..
또 캐릭터들은 눈 코 입 구조가 인간 같지 않음에도 하나 같이 멋있다.
리바이 앓이를 하며 아이시떼루를 외칠 뻔했다.
(리바이:리바이 아커만 조사병단 병장으로 최고의 전투력을 지닌 인물)
리바이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진격의 거인은 꽤 철학적인애니메이션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할 만큼 무수히 많은 전쟁을 치르며 현재에 이르렀다.
작품 속에서도 거인을 앞세워 끝없이 전쟁을 치르던 인류는 거인이 사라졌음에도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무고한 죽음 없이는 나아갈 수 없는 것이 인류의 본성인가 하는 씁쓸한 생각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