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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Oct 06. 2024

지갑을 열리게 만드는 힘

배려의 힘

몇 달 전 이야기이다.

아들의 전화였다.

"엄마, 결이 우리 집에서 자도 돼? 이러이러해서 하루만 재워 달래."

중1 때부터 아들의 친구였던 결이는 어른들이 아주 좋아할 만한 자질을 갖춘 아이다.

성적은 당연히 우수하고 리더십과 기본 소양을 갖추고 있어 반장도 도맡아 하는 모범생이다.

축구를 좋아하고 사회성도 좋은 이 아이는 어머님이 누구니? 시전 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아들의 부탁에 오케이 한 후였다. 

결이에게 톡이 온 것이다. 친구를 통해 부탁하기보다 내게 직접 양해를 구하려고 연락을 한 것이다. 역시가 절로 뛰어나왔다.

이모로 시작하는 메시지에서 예의와 공손이 느껴짐은 물론 친구 엄마에게도 정중히 허락을 구하는 모습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숙박 요청이었다.

박상철의 무조건 무조건이야~~ 가 절로 대답으로 나오다 못해 치킨 사줄게를 외쳤다.


내 아들의 예의 바른 친구에게 이모의 비상금을 기꺼이 털어주마 하는 심정이었다.


상대의 지갑을 열게 하는 방법은 이렇게 어렵지 않다.


주말 아침

미인은 아니지만 잠꾸러기인 나는 또 늦잠을 자버렸다.

반찬까지 똑 떨어져 김치찌개와 나물을 재빨리 해 놓고 약속이 있어 허둥지둥 나왔다.

당연히 주방은 꺼내 놓은 양념통에 가득 쌓인 설거지 거리들로  누가 볼까 무서울 지경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아침형 인간을 넘어 새벽형 인간인 남편은 그 사이 헬스장에 있었다.

그리고 남편은 내가 급히 나간 사이 돌아왔다. 남편은 내가 해 놓은 아침찬들로 애들 밥을 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식탁까지 깨끗하게 정리해 놓았다.


누군가에게는 보통의 일상이겠지만 내게는 감동이란 단어로 표현될 만한 일이었다.

남편은 내 브런치에서 늘 이리오너라 하며 안채에서 노비를 부르는 모습으로 묘사된 바 있다.

여기서 노비가 나라고 굳이 말하기 싫다.

이렇듯 남편의 가사 노동 기여도는 전무했고 이것이 맞벌이 부부인 우리의 다툼에 원인이 된 적이 많았다. 다툼의 원인이야 뭐 성격차이, 돈문제, 술문제 등등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 하나가 가사분담 문제였다. 남편은 밥을 먹고 난 후 자기 자리를 닦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난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런 문제들로 남편을 구박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변하기 시작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나?

아님 사주에 관이 없는 내가 대운에서 관을 맞아 그런 건지? 아님 남편이 이제 사람이 되려는 건지?


여하튼 집안일을 많이 돕기 시작한 남편 덕에 내 인생이 좀 편해졌다.


그날도 식탁까지 깨끗하게 치우고 닦아 놓은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나는 지갑을 열어 남편이 좋아하는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남편에게 건넸다.

참고로 남편은 점심 식사 후 여직원을 만나 커피숍으로 인도 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늘 내게 송주야 만원만을 랩을 치듯 해 대며 사람을 못 살게 하는 집요한 인간이다.


하지만 그날은 만원만 랩을 듣기 전에 지갑을 열었다.


자동으로 지갑을 열게 만드는 힘

그건 바로 배려 깊은 말과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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