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함께 수업이 시작됐다.
"커피는 무슨 맛으로 먹는 거예요?"
학생이 물었다.
"커피는 맛으로 먹는 게 아니야. 낭만으로 먹는 거지."
"뭐래요?"
학생들의 질문에 떠올린 대답이 낭만이라니..
풋 내가 생각해도 왠지 모르게 오글 거린다.
어이없는 대답에 야유 섞인 실소가 함께 나왔다.
17세기 고가의 수입품이었던 커피가 유럽 상류층과 귀족들의 사교 문화에 빠질 수 없는 음료가 되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 다도 문화가 있었던 것처럼 그 당시 유럽에서도 커피를 제공하는 방식과 절차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데 그게 낭만과 무슨 상관인가?
아마도 나는 학생의 질문을 받자 차 마시는 상류층 여인들이 그려진 명화를 떠 올렸던 모양이다.
커피를 마시는 이 행위는 일종의 중독이자 루틴이다.
이 쓰디쓴 검은 물의 시작은 맛있다기보다 다들 먹길래였다.
온만상을 찡그리고 한 두 모금 마시다 보면 쓴맛에 반해 그 속의 카페인에 취해 없이는 못 살게 된다.
한 모금 두 모금 검은 물이 몸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커피가 주는 강한 매력을 뇌는 기억해 버린다.
나는 밤새 비축 해 둔 에너지를 수업으로 모조리 탕진하고 지인들과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 체력도 남지 않는 상태로 하루를 사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최약체란 소리다. (이런 저질 체력은 주변에서 찾기 힘들 것이다.)
또 커피를 마시며 낭만을 운운할 정도의 물리적 시간도 낼 수 없다.
그러니 내가 마시는 커피는 주기적으로 보충해 줘야 하는 생존 음료쯤 되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전투적으로 커피에 집착하게 되었다.
일정한 루틴 대로 커피를 마시지 못하더라도 버틸 수는 있다. 하지만 머릿속에 커피가 둥둥 떠 다닌다. 피를 갈망하는 뱀파이어처럼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커피를 찾게 된다. 내 휴대폰 바탕 화면에도 여러 개의 커피 주문 앱이 깔려 있다. 커피 수혈이 긴급하게 필요할 때 신호 대기 중 주문을 하고 지나는 길에 픽업하곤 한다.
세상에 중독보다 강한 게 없다더니..
그러면서도 커피에 촌스럽게 낭만을 붙이다니...
내게 커피가 낭만이던 시절이 있기는 있었나?
그냥 뇌가 기억하는 중독이자 루틴일 뿐..
하지만 오늘도 커피 머신에서 커피가 내려질 때 나오는 기계음에 감히 행복하다.
하루에 마시는 첫 모금의 커피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