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체험 중
남편이 다정한 사람이 아닌 것은 연애 때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결혼 후에도 꽁냥꽁냥 이런 건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간질간질 한 건 질색 팔색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오랜 연애 기간 동안 봐 온 것보다 더 다정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부산 바다의 거친 바람이 몸에 밴 듯한 남편은 어느 개그맨의 대사였던 "내 아를 낳도." 보다 한 수 위의
무뚝뚝함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뉴스나 스포츠를 보고는 얼마나 입을 털어 대는지 시끄러워 죽는다. 마음 같아서는 그 입을 한 대 때려 주고 싶기도 했다. 아직 야구 시즌이 아닌 관계로 요즘 남편의 욕받이는 윤땡땡이다.
남편은 음주를 좋아하는 성실한 가장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음주를 좋아하는데 성실한 가장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내 성실의 기준은 매달 따박따박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이기에 성실한 것은 일단 맞다. 하지만 남편은 술과 결혼했어도 야구를 곁에 두고 잘 살았을 사람이다.
결혼 후에도 남편의 술 사랑 야구 사랑은 변함이 없었지만 난 운동을 좋아하는 남자들은 다 그런가 보다 생각했고 받아들였다. 운동이라는 취미가 나쁜 건 아니니 제지할 이유도 없었다.
나 역시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하지만 운동이 술과 콜라보가 되면 문제가 생긴다. 술을 먹고 들어온 남편은 늘 그렇듯 자버리면 그만 이었다.
잠들지 않으면 더 문제였다. 반 토막 난 혓바닥을 놀려 되며 똥송주 똥송주 부르기 시작하면 곤란하니 차라리 뻗어 자는 게 내 스트레스 관리에 도움이 되었다.
강철 체력으로 보이는 남편은 그러면서도 지각 한번 없이 회사에 출근했고 가족과 함께 하는 어떤 곳에는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고 할 말은 없었지만 집안일에 대한 역할 분담은 늘 내 심기를 건드리곤 했다. 분담이 돼야 분담을 하지..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ㅎㅎ
남편의 주된 대사는
"난 문인이라 그런 거 못한다."였다.
조선 팔도 귀천이 없어진 지가 언젠데 저딴 소리를.. 남편은 가사 중 못하는 것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아니 그냥 다 못했다.(지금은 좀 낫습니다.)
밖에서의 남편은 내가 인정할 정도로 머리 회전도 빠르고 업무 처리도 능통한 사람이다. 하지만 집에서 만큼은 저스트 베이비였다.
"그럼 난 양인이라 다 하냐?"
하며 톡 쏘아붙이고는 팔을 걷어 부치는 것은 결국 내 쪽이었다. 막상 천인이 튀어나오지 않는 것은 신분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 때문이었을까?
또 시켜 놓고 남편이 바로 엉덩이를 안 떼면 내가 해 버리고 속으로 욕을 했다. 앓느니 죽지.
여하튼 나는 그렇게 결혼 생활 동안 나름의 보살을 자처하며 살아왔다. (남편은 제 의견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답니다.)
아들을 낳아 키우다 보니 아들들이 이렇게 커 주면 좋겠다 하는 기대 같은 것이 생겼다.
술은 멀리하고 다정다감 한 남자
남편과 반대로 아들들이 자라 주었음 했다.
아들들이 미성년자라 아빠 닮아 말술일지 날 닮아 알쓰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살갑고 다정다감한 내 스타일 아들이 하나 있다.
뭐 아들들 둘 다 같이 있으면 하하 호호 나를 웃게 만들지만(시험 기간 속 뒤집을 때 제외) 특히 둘째와 내가 코드가 잘 맞는 것 같다.
나는 얼마 전부터 돈가스를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등심을 주문해 우유에 살짝 재어 놓고 쉬고 있었다. 둘째가 그걸 보더니
"엄마 돈가스 만들어? 나도 같이 하자." 했다.
일회용 식탁보를 홈바에 펼쳐 놓은 후 우유를 씻어내고 물기를 닦은 고기에 후추와 소금을 쳤다.
아들과 홈바에 나란히 서서 음식을 만들고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남편과는 그려낸 적이 없는 그림이었다. 앞서 꽁냥꽁냥이 싫다고 했던 사람 어디 갔는지?
둘째는 다정다감한 아이다. 우리는 여태 서로 귀를 파주거나 보드 게임도 함께 한다. 사춘기라 엄마인 내게 웃음을 보이는 횟수가 줄까 걱정했던 아들은 내 걱정과 달리 다정다감하게 잘 커 주고 있는 것 같다. 친구들과 어울려 잘 놀기도 하지만 엄마의 이름을 언제나 새기고 사는 느낌을 주는 착한 아들이다.
이제 술만 지켜보면 될 것 같았다.
제발... 술 잘 못 먹기를...
비닐장갑도 서로서로 끼워 주며
밀계빵 (밀가루, 계란, 빵가루) 순으로 고기에 튀김옷을 입히고 나니 그럴싸한 돈가스가 완성되었다.
"이 정도면 내가 엄마보다 잘하지?"
아들의 언어는 언제나 유쾌하다. 씩 웃고 정리까지 함께 한 후 만든 돈가스를 냉동고에 재었다.
'우리 집 차가 도착했습니다.'
남편이 돌아왔다. 주말에 야구 심판 알바를 하러 갔다 점심때가 훨씬 지나 남편이 집에 왔다. 이번 주에 우리 부부는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 다운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 그럼에도 주말까지 일하는 남편이 안쓰러웠다. 일, 술 두 가지 중에 술 빼고 일만 할 수는 없는 게 남자들의 사회생활인 걸까?
안쓰럽다고 생각하던 그때 남편이 말했다.
"우유 주문 했는데 우유값 좀 주라."
밀린 우유값 수금 하러 온 직원인가?
한 주의 끝에서야 제대로 얼굴을 보는 남편이 내게 건넨 첫마디는 참으로 참으로 다정다감했다.
글은 이렇게 써도 저희 부부 잘 지냅니다. 왜냐하면 저는 보살이니까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