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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신을 싣고 걷지 못했다.

by 송주

어느 날 남편이 구두를 사 왔다. 예쁜 색의 예쁜 구두는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자랑을 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구두는 슬픈 물건이었기에...


나는 구두를 못 신는다.

구두를 신으면 불편하고 발이 아파 운동화만 고수 한지 오래됐다. 내 구두들은 신발장에서 얼음땡 자세로 몇 년을 보냈다. 그러다 얼마 전 수거함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식구들 신발을 놓을 자리가 없어 신지 않은 내 구두를 가장 먼저 버렸다.

5cm, 8cm 아름다운 곡선의 하이힐과 그렇게 빨리 작별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다 이제 굽이 낮은 구두조차 신으면 발이 아파 하루를 보내기 힘들었다. 운동화만 신고 다닌 지 아주 오래되었고 혹시 몰라 일터에는 슬리퍼 한 켤레를 갖다 놓았다.


지난 3월 친척 동생의 결혼식이 있었다. 정장에 운동화를 신기에 다소 어색했다.

구두를 다 버리고 나니 예를 갖출 자리에 신고 갈 마땅한 신발도 없었다.


신발장 앞에서 고민하던 나를 본 남편이 예쁜 구두를 선물한 것이다.

구두였지만 그렇다고 굽이 높은 하이힐은 아니었다.

폭신한 구두 속 안감을 보니 저 정도 쿠션이면 나도 신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봄바람에 치마를 입은 어느 날 구두에 발을 넣었다.

역시 밖을 걸어봐야 고통의 진가를 알 수 있다. 구두를 신고 나온 것을 후회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5분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주차된 차까지 가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발가락이 아파 왔다. 구두는 역시나 가까이하기에 먼 당신이었다.

간신히 일터로 가 슬리퍼로 갈아 신고 구두를 비닐봉지에 살포시 넣었다. 요란한 비닐 소리가 구두의 외침 같았다. 졸지에 구두를 봉지에 넣고 소중히 이고 다니는 꼴이 되었다.


출근 길과 퇴근 길

내 마음처럼 되는 게 없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봄이 온 후 여름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깨닫고 있다.

1에 1을 더하면 2라는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답이 나오면 좋겠지만 삶은 그렇지 못하다. 종잡을 수가 없다.

건강하게 살고 싶지만 지금도 건강하지 않고 더 건강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남편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도 때때로 다툼이 생긴다.

아들들이 속 좀 안 썩이면 좋겠다 싶어도 머리가 커지니 도리도리다.

예쁜 구두 한번 신어 보겠다는데 그것 조차 쉽지 않다.


사람은 끝없이 포기하는 것을 배우는 길 위를 걷는 소모품 같다. 육체도 감정도 다 닳아 없어지거나 엷어질 것을 안다. 그럼에도 놓지 못하다 결국 죽음 직전에 마지못해 모든 것을 내려놓는 새드엔딩을 맞는다.


발을 넣어봤자 발만 아픈 구두를 처연히 보고 있자니 세월이 문젠지 내 발이 문제인지 아니면 고통의 역치가 낮은 내 정신력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단지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잘 없다는 것만 알겠다.


구두는 다시 신발장 장식품이 되었다.


곧 월요일입니다. 모두 출근하기 싫어도 해야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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