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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Dec 05. 2023

오사카 여행-남편이 준 미션

오사카 미즈노 매장 방문기

남편은 이번 일본 여행에 함께 하지 못했다.

아마 남편이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동안에는

3박 이상의 여행을 함께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회사가 그런 곳이더라

휴가를 다녀오면 가족의 생계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그리고 때마침 여행을 떠나는 그 주 주말에 남편의 회사 워크숍이 잡혀 이런저런 이유로 남편은 함께 하지 못했다. 


남편은 직장생활 말고 주말에 야구 심판 일을 하고 있다. 야구를 워낙에 좋아하는 사람인 남편은 어느 날 야구 심판 정규 과정 있는 서울의 대학교를 몇 주 동안 왔다 갔다 하더니 심판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 후 남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시간이 나는 주말마다 야구심판 일을 병행하고 있다. 평일에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주말에는 야구 심판으로 성실한 가장 역할을 해내고 있는 남편은 요즘 흔히 말하는 투잡러인 셈이다.

이렇게 남편은 생활력이 강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은 완벽할 수 없는 법 성실한 남편은

시키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여행을 떠나기 일주일 전

남편은 내게 일본 오사카 미즈노 매장 주소를 찍어 보내왔다.

오사카 미즈노 매장



뭐지 이 피곤할 것 같은 기분은?

부탁을 하려면 뭐라도 주고 부탁을 해야지


난 남편 빼고 가는 여행이라 미안한 마음이 있긴 했지만 여행 경비도 일 푼 보태주지 않는 남편이 야속해 양심이 있니 없니를 운운하며 타박을 했다.


드디어 출발하는 날 공항까지 나와 아이들을 태워 주러 휴가를 낸 남편과 함께 우리 가족은 공항에서  아침 식사를 하게 되었다. 공항 식당에서 설레는

식사를 마친 후 나와 아이들을 자리에 앉힌 남편은 품속에서 우리 세 식구 이름이 써진 하얀 봉투 세장을 꺼냈다.

난 순간 심한 감동이 몰려왔고 남편을 구박했던 그 순간을 마음속으로 많이 미안해하게 되었다. 마음의 상처는 역시 금융치료가 답인가 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즈노 매장을 잘 찾아가서 남편이 사 오라는 물건을 사 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러 들어가는 내내 혼자 돌아가야 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손이 안 보일 정도로 인사를 했다.

나란 여자 참 그때그때 감정에 충실하다. 그리고

남편이 전략적인 사람인 걸 순간 잊었다.



오사카는 지하철이 복잡하기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특히 오사카 미즈노 매장은 오사카역 근처에 있는데 관광객들에게 던전이라고 불릴 만큼 한번 들어가면 나오는 것조차 힘든 지역이다.

여행 셋째 날  난 남편이 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아이들을 숙소에 잠시 있게 한 후 길을 나섰다.

숙소에서 지하철을 타고 우메다 지하로 들어가는  순간 구글 맵을 켜고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처럼 부산 지하철에서도 길을 헤매는 울산 여자에겐 구글맵도 무용지물이었다.


헨젤과 그레텔처럼 빵 부스러기를 뿌리면서 다녀야 할 정도로 모든 곳이 복잡했다.

한참을 버뮤다 삼각지대 주인공처럼 헤맨 끝에

찾아낸 미즈노 매장은 사실 환상적이긴 했다.

총 7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야구용품뿐 아니라 각종 스포츠 용품들로 층층마다 가득 차 있었다.

6층 야구 용품 매장에 들어선 순간 진열대에 진열되어 있는 예쁜 글러브들이 화려한 색깔의 자태를 뽐내며 다소곳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난 남편에게 무사히 미즈노 매장에 입성했노라 자랑스럽게 톡을 보냈다.

그 봉투를 받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를 하기 시작 한 건 그때부터다.


남편과 나 그리고 매장 직원의 삼자 대화가 시작됐다. 남편이 원하던 물건은 Arm Guard라는 보호 장비였는데 아쉽게도 그 매장에는 그 장비가 없었다. 그때 부터 남편은


"이것저것 사진 찍어 보내 봐"

"○○○있는지 물어봐 검은색"

"○○○도 찍어봐" 

"○○○있는지 물어봐"

"이건 얼마야? 저건 얼마야?"

이렇게 수십 번 이어지는 남편의 요구를 파파고를 통해 번역한 후 다시 직원에게 보여주며 매장 직원을 본의 아니게 괴롭히게 되었고

내 입에서' 피곤해서 못 살겠다.'

소리가 나온 다음에야 두 개의 물건을 고른 남편은 후에 사케와 산토니라는  위스키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난 또 당했다.

남편은 결혼 이후 이런 식으로 나를  조련하며 본인의 목적을 달성했다.

남편이 고수인지 초고수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하수 인건 확실하다.

이번에도 역시 남편의 큰 계획에 제대로 걸려든 것 같다.



난 그날 남편 덕에 우메다 지하철 역 구석구석을 헤매다 우연히 유명한 타코야키 집을 발견하고 나름의 나이스를 외치며 한나절을 마무리했다.

남편 역시 내가 사 온 선물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Thanks a lot을 외치며 만족스러워했다.

하나다코 타코야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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