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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Dec 05. 2023

여행 중 응급실 1

오사카 응급 클리닉 방문기

이번 여행을  계획하며 내가 제일 걱정 했던 건  사실 아들 둘이었다.

이들은 지금 중1, 중3의 공산당도 못 쳐들어오게 할 천하무적 똘 i 들이다.

사춘기 최고 레벨을 찍고 있는 이 두 녀석이 징징이로 변한다거나 무리한 엄마의 지갑 털기를 강행한다면 내가 얌전히 이들을 어르고 달래고  타협하여 모두가 행복하게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가 최대 문제였다.

(부모는 어쩔 수 없다. 여행에 와서도 자식의 행복을  운운하다니.. 입버릇처럼 낳았으니 키운다는 내 말은 사실 새빨간 거짓말이다.)


하지만 여행의 최고 민폐가 내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오사카에 도착한 첫째 날 저녁 하루카츠 300 전망대를 기분 좋게 보고 저녁을 먹기 위해 난바로 이동하는 지하철 안에서 일이 벌어졌다.

내 왼쪽 눈에 문제가 생긴 걸 직감했다.

고인 물 위에 검은 잉크를 떨어뜨린 것처럼 눈앞에 검은 실타래들이 떠 다니기 시작했다.

순간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안과에서 망막박리 진단을 받던 그날처럼 말이다.

담당 선생님께선 눈앞에 보이는 게 많아지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오라고 하셨다.

안과 질환 중 골든타임이 있는 눈 질환이 바로 망막박리이다. 만약 지체 하다 수술이 늦어져 망막이 황반에서까지 분리되면 실명에 이를 수도 있다.

망막박리()는 안구 안에 붙어 있는 망막이 떨어져 나가는 현상으로 주로 50~60대에 발병하지만 모든 연령대에서 발생할 수 있으며, 장시간 방치되면 실명에까지 이를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안과 질환이다. 박리가 언제, 어떻게 올진 아무도 모르니 주기적으로 안과 검진을 받는 게 좋으며, 특히 고도 근시인 경우, 더욱 주의하여야 한다.

출처 <나무위키>



난 몇 년 전 비문증으로 대수롭지 않게 안과를 방문했다 망막박리 진단을 받았다. 망막에 단순 구멍이 생기는 열공에서 나아가 이미 박리가 진행된 상태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레이저 응고술이 가능하여 더 이상 박리가 진행되지 않도록 떨어진 부분 주위로 동그랗게 레이저로 벽을 쳐 놓은 상태이다.

망막 박리의 다양한 원인 중 하나가  근시이다.

근시 환자가 워낙 많아서 안경을 써도 별로 개의치 않는 분위기지만 근시는 엄연한 안과 질환이다.

근시가 있는 사람은 안구의 길이가 가로로 점점 길어지게 되며 길어진 안구는 뒤쪽에 붙은 망막을 천천히 견인한다.

나 역시 근시가 원인인 되어 망막 박리가 생긴 것이다.


 그 후 왼쪽 눈은 레이저 후 부유물 들과 떨어진 망막 찌꺼기들로 혼탁한 상태이다.

 겪어보지 못하면 알 수 없는  혼자만의 불편함을 겪고 있는 중이었는데 하필이면 타국에서 이름도 생소한 이 병을 설명해야 하는 자체가 곤욕이었다.



급한 마음에 지하철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구급차를 불러달라 요청했다.

그 사이 큰 아들은 영사관 콜 센터에 통역 도움을 청했지만 전화 연결이 쉽지 않아 꽤 애를 먹었다.


구급 대원들이 도착했고 아들 둘과 나는 일단 구급차에 올랐다.

난 번역앱을 통해 내 증상과 과거 병력을 설명하고 안과 진료가 가능한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긴급 귀국을 해야 할 수도 있었고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자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나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정말 이 놈의 몽뚱이는 생기다 만 건지 대상도 없는 원망이 마음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한국에서도 응급 진료가 되는 안과를 찾는 건 힘들다.

일본도 마찬가지인 듯 싶었다. 구급대원들은 나를 위해 40분간 진료 가능한 병원을 찾아 여기저기 통화를 하였고 드디어 한 군데를  발견했다.


Osaka emergency clinic

저녁 10시에 문을 여는 이곳에 다행히도 안과 전문의의 진료가 그날 있었다.

작은 아들을 숙소에 잠시 두고 큰 아들과 함께 병원을 방문했다.

아들의 휴대전화로 내 상황을 설명해 줄 영사관 콜 센터 직원과 통화하며 그렇게 응급 클리닉 접수가 시작되었다.

멀쩡해 보이는 외국인의 방문에 접수대 직원은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리고 의사소통의 문제로 진료가 힘들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순간 정말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한국말과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직원이 내 상황을 듣고 나와 도움을 주면서 다행히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직원은 현금으로만 병원비 결제가 가능하다고 강조했고 난 급한 마음에 지갑에 현금이 얼마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예스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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