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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Dec 28. 2023

1500원 커피

작은 관심의 힘

커피가 언제부터 내 생명수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난 원래 커피를 못 마시는 사람이었다. 이유는 카페인 부작용을 불면과 심계항진으로 겪은 터라 이번생에 나와 커피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언제부터 마시게 되었는지 기억도 없지만 하루 한두 잔 마시는 커피가 삶의 낙이 된 지 꽤 오래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수업 장소를 오며 가며 지나 길목에 있는 저가 커피 매장이 나의 단골 커피숍이다.

늘 수업이 끝나고 다음 수업을 위해 이동하기 전 앱을 통해 미리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한다.


외향적이지도 내향적이지도 않은 중간형 인간이고

싫고 좋고 표현도 인색한 중간형 인간이며

뜨거운 것도 차가운 것도 잘 못 먹는 이 조차도 중간형 인간이다.


주문요청 사항에 늘 얼음 조금 넣어 덜 뜨겁게 해 주세요라는 코멘트를 남긴다.

내 요청대로 커피는 뜨겁지 않은 상태로 받은 즉시 마신다 해도 입이 데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온도로 내게 전해진다. 


그날은 바쁜 날이었다. 급하게 앱의 주문 버튼을 눌렀다. 마치 기계처럼 확인 버튼을 내리누르느라 늘 넣던 요청사항을 입력하는  잊었다.

뜨거운 커피를 식히다 다음 수업 전까지 몇 모금 마시는 것도 힘들겠다고 생각하며 커피를 찾으러 갔다.


매장 직원은 내가 다가오자 익숙한 듯 말했다.

"얼음 넣어 달란 말이 없으셔서 안 넣었어요"

그제야 난 깜짝 잊었다며 얼음 몇 개를 넣어 주길 부탁했다.


커피를 받고 내내 기분이 좋았다.

직원은 늘 얼음 넣은 커피를 주문하던 내가 그날따라 별다른 코멘트가 없었던 게 의아했는지 다시 내게 커피주문을 확인했던 것이다.


내 취향을 알고 나를 위한 커피를 준비해주고자 한다는 사실에 대한 고마움은 물론 1500원짜리 커피 한잔을 사며 대접받는 기분까지 들었다.

커피 집 직원이 단골손님의 커피 취향을 아는 게

그리 대단한 일이겠냐만은 

원두값 빼고 용기 값 빼면 얼마 남지도 않을 저렴한 커피 한잔을 사면서 매번 뜨겁지 않은  핫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손 많이 가는 손님의 잊은 요청 한 줄을 직원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큰아이 출산 후 친정 엄마와 함께 살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가 토마토 주스를 마실 수 있는 나이쯤 되자 친정엄마는 아침마다 토마토 주스를 갈아주시곤 하셨다. 엄마는 본인의 출근 전 바쁜 아침시간에도 나와 내 아들을 위한 토마토 주스를  두 잔씩 준비해 주시는 걸 잊지 않으셨다.

두 잔의 토마토 주스 위에 각각의 다른 코멘트가 적힌 종이가 올려져 있었다.

하나의 컵 위에는" 꿀 넣은 거 ○○이 거"

또 다른 컵 위에는 "꿀 안 넣은 거 송주 거"


엄마는 내가 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내 토마토 주스에는 꿀을 넣지 않은 것이다.

내 취향을 잘 알고 번거롭게도 두 잔의 다른 토마토 주스를 준비해 놓은 엄마의 정성에 감동을 받아 가슴 찡한 울림이 느껴질 정도였다.

엄마는 그렇게 내가 단맛을 좋아하는지 아닌지 꿰뚫고 있었다. 엄마이기에 자식의 취향을 당연히  알 수도 있다. 엄마는 단지 내가 단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아침마다 바쁜 시간을 쪼개가면 두 종류의 주스를 준비하신 건 아닐 것이다.

종류의 토마토 주스를 준비하는 수고스러움에는 자식에 대한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하물며 나와 특별한 관계가 아닌 누군가가 내 취향을 알고 베풀어 주는 작은 친절은 필시 단골손님의 대한 관심에서 나오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얼음에 대한 코멘트가 없었으니 그냥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내놓으면 그만이었을 텐데 말이다.


직원의 한마디에 하루종일 내가 기분이 좋았던 만큼 친절과 관심은 당사자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관심의 표현은 특별한 재주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 만큼 내가 전하는 관심 어린 한마디에 행복할 누군가를 상상해 본다.


그날만큼은 1500원짜리 커피가 아닌 15000짜리 고급 커피 한잔을 먹은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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