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아킨 피닉스가 조커로 출연하는 영화 조커를 보았다. 명불허전(名不虛傳 )답게 조커의 명품 연기와 함께 연출이 뛰어난 작품이었다. 자칫 단조롭게 끝날 수 있는 악당이 탄생하는 과정과 차별화하는, 관객과의 충분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2시간 가량의 상영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영화 <Her>에서도 AI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주인공의 내면 연기가 돋보였다면 이번에도 불합리하고도 무기력한 세상에 대한 주인공 아서 플랙(Arthur Fleck)의 심리 묘사가 탁월했다. 표정 연기 뿐만 아니라 구두끈을 조이는 뒷태를 클로즈업하는 장면에서는 숨이 막힐 정도로 먹먹함이 찾아왔다. 실제로 주인공 호아킨은 이 역을 맡기 위해 52파운드 (23.5kg)을 감량했다고 하니 그 노고가 다시 한번 대단하게 다가왔다. 배트맨 시리즈에서 보였던 어찌보면 괴상해 보이기도 했던 조커의 몸짓 하나하나가 이번 영화로 조금이라도 이해되었다.
배우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도 감독 토드 필립스 (Todd Phillips)가 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주목해 보겠다. (참고로 토드필립스는 레이디가가와 브래들리 쿠퍼를 주연으로 했던 '스타 이즈 본(Star is born)'을 찍었던 감독이다.)
유투브 채널 '조승연의 탐구생활'에도 나왔지만 배경은 1970년대 고담시(Gothem)로 대표되는 뉴욕이며 그 중 맨해튼의 북부 지방인 브롱크스(Bronx)이다. 실제로 뉴욕의 별명이 고담이라고 하고 그 이유로는 왕이 지나갈 때 마을 주민들 모두가 일부러 왕의 방문을 피하기 위해 미친척을 해서 생긴 별명이라고 한다. 극적인 장면 이후 "Gothem is burning"이라는 생중계 장면이 나오는데 이 역시 "Bronx is burning"을 빗댄 표현이라고 한다. 과거 야구 중계 채널에서 실제 빈번했던 브롱크스의 화재를 카메라로 포착한 적이 있는데 이를 보고 캐스터가 '브롱크스가 불타고 있다!' 라고 외쳤다고 한다. 감독의 세세한 의도를 잘 반영하는 장면이었다. 당시 브롱크스의 중산층들이 대거 교외로 나가면서 브롱크스는 빈민가가 형성되는 데, 빈집이나 차에 불을 놓아 보험금을 타내려는 방화가 잇달았다고 한다. 게다가 세금 조차 잘 걷히지 않아 소방대원이 출동하지도 못하여서 도시 곳곳이 불타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또 하나 주목할 장면은 바로 계단이다. 주인공 아서가 힘든 일상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항상 언덕이나 계단오르기와 연관되어 있었다. 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힘없는 모습으로 지하철의 계단과 제퍼슨가의 계단을 하염없이 오른다. 반면에 잃을 것이 없게 된 주인공이 조커의 모습으로 세상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장면부터는 하강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잇따른다. 오르기는 힘들어도 내려오기는 쉬운 법인가. 조커는 춤을 추며 계단을 기쁜 마음으로 내려온다.
왜 태어났는가에 대한 답도 모른채,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항상 어려움은 봉착하게 마련이다. 삶의 목적과 동기가 분명하다면 조금 위로가 될지언정,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특히 상승에 대한 욕구가 강할수록 많은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가끔씩은 옆이나 뒤를 돌아보면서 어쩌면 훨씬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사회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게 아닐까. 감독이 이 시기에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 역시 부의 양극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회복지망 및 안전망에서 소외되는 계층에 대한 관심이 그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최근 관심있었던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21세기 자본론 (Capital in the 21st Century)'이 생각났다. 그에 따르면 '자본수익률'이 항상 '경제성장률'을 웃돈다고 했다.
r >g
r; 연평균 자본수익률 (=자본에서 얻는 이윤, 배당금, 이자, 임대료, 기타소득을 자본총액에 대한 비율)
g; 경제성장률 (소득이나 생산의 연간 증가율)
이는 19세기 이전의 역사에서 대부분 그러했고, 21세기에 다시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한다. 자본수익률은 크게 '기술'과 '자본총량의 규모'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토마 피케티는 해결책으로 부자세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내놓아 비평을 받긴 하지만 그가 주류 경제학의 이론으로 맑스로 대표되는 비주류경제학자의 의견을 내놓아 큰 화제를 일으켰다. 20대 초반에 이미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을 만큼 뛰어난 수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숫자놀음, 수학에 치중된 이론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고국 프랑스로 돌아가 자신만의 연구를 시작하여 낸 책이 바로 <21세기 자본론> 이다. 그가 한국의 강의에서도 밝혔듯이 해결책은 각자가 생각해보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가 제시한 문제점은 주류와 비주류 경제학자 모두 비판할 수 없을만큼 통시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탄탄한 근거를 갖고 있다.
조커를 보고 든 생각이 이러한 사회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조커로 대표되는 사회불만 세력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 안전망과 보장성 강화를 위해 어떠한 길이 바람직한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항상 얼굴에 웃음을 띌 수 밖에 없는, 그래서 모친으로부터 항상 '해피'라고 불리우는, 아서의 분장실에서의 슬픈 미소가 머릿속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