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이후 모처럼 재밌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출연진부터 듬직한 크리스찬 베일과 멧 데이먼이 주연을 맡아 더욱 무게가 실렸다. 그릇된 편견일 수 있지만, 할리웃 배우들은 나이가 들수록 경력에서 나오는 중후감이 있다. 제이슨 본 시리즈에서 멋진 액션 배우 역할을 했던 멧데이먼 역시 미국의 덩치 큰 중년 아재가 됨은 피할 수 없나 보다. 하지만 중년의 마법과 같은 매력으로 연신 질겅질겅 씹어대는 껌만큼이나 찰진 연기를 선보인다.
크리스챤 베일은 두말할 필요 없는 명품 배우라고 생각한다. 배우의 최고 자질은 바로 배역에 녹아드는 것이다. 본인의 개성보단 극 중 인물과 동일시되어 원래 그러한 사람이 있었던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킬 때 비로소 명품 배우가 탄생한다. 그러한 점에서 보았을 때 두 배우의 연기력은 왜 할리우드가 세계를 재패하는 지, 왜 이 두 배우들이 할리우드를 재패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두 주연 배우의 멋진 연기도 연기였지만 실화에 바탕을 둔 스토리 역시 일품이었다. 조승연 작가의 탐구생활에서 배경 설명을 듣고 보게 되어서인지 당시 르망 24 대회를 두고 포드사와 페라리사의 자존심 대결, 어찌 보면 유럽권과 2차 대전 이후 신흥 강국 미국의 자존심 대결이 돋보였다. 이외에도 입체적인 인물 관계를 통해 포드 내에서 임원진과 레이싱 팀과의 갈등, 또한 켄 마일스와 그의 아내와의 갈등, 두 배우들과의 미묘한 갈등 등을 잘 묘사하였다. 덕분에 2시간이 훌쩍 넘는 긴 러닝 시간에도 극 중 긴장감을 잃지 않고 집중할 수 있었다. 대회 우승보다도 비굴한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24시간에 달하는 극한 환경과 좁은 머신 속 켄 마일스는 특유의 거친 억양으로 "아임 해피~ H.A.P.P.Y!" 라 외치며 극은 절정에 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셜비 역을 맡은 멧데이먼이 흔들리는 눈빛을 검은 선글라스로 감추는 장면은 그 어떤 소설보다 극적이다.
가끔 멋진 영화 같은 이야기보다 실화에서 더 큰 감동을 얻는다. 비단 실제 일어났던 일에 대한 경외심뿐 아니라 웬만한 소설보다 더욱 극적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인생을 통해 얻는 메시지가 내 인생과 묘한 공감대를 이룰 때 진정한 몰입이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에 나타나는 여러 갈등 구조들이 바로 우리네 인생 어느 부분들과 닮아 있기 때문에 쉽게 눈을 떼기 어려웠으리라.
켄 마일스와 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푹 빠질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은 행운아다. 그런 행운을 누려보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