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살이v Nov 30. 2022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

창작의 기쁨

서점에서 아이들 책을 봐주다가 [전천당]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흰머리에 일본 기모노를 입고 있는 할머니처럼 보이는 여자가 전권 표지에 걸쳐 매서운 눈매로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전권을 사주자니 비닐로 싸여져 있어 내용은 열어보지도 못해서 약간 망설여졌다. 하지만 마침 당x마켓에 중고로 반값에 팔길래 전권을 살 수 있었다.


 책을 열어보자 아.뿔.싸.! 아이들에게 읽혀줄 그림책이라 예상했지만 글 밥이 꽤되는 책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러 독립된 에피소드별로 나누어져 있었고, 각 에피소드마다 그림 한두 개씩은 들어가 있었다는 점이다. 전권을 산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잠자리에서 자기 전에 하나의 이야기라도 읽어주자라고 다짐을 했다.


전화위복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인가.   미취학 아동에게 어려워 보였던 글 밥 많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둘째 녀석이 곧 관심을 보였다. 다행히 처음 읽어주었던 에피소드가 우리 아이들에게 매우 흥미로웠나 보다. 덕분에 둘째 아이에게는 처음 보게 되는 글 밥 많은 책이 [전천당]이 되었다. 마침 티비 애니메이션 채널에서도 만화로 [전천당]을 방영하고 있어서 아이들이 더욱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전체적으로 비슷한 구조가 반복되지만,  각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소재는 매번 다르다. 보통 우연히 길을 가다 오래된 만물상 같은 [전천당] 이라는 곳을 발견하게 되고, 이곳 주인 '베로니카(홍자)'에게 불량식품 혹은 장난감 같은 물건을 싸게 사게 된다. 그리고 이 물건/음식들은 대부분  등장인물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마법이 있지만, 항상 주인공들은 사용법을 끝까지 잘 읽지 않는다. 따라서 신기한 능력을 가지게 되는 동시에 멈추는 방법을 모르거나, 각종 부작용 때문에 천신만고 끝에 그 효능을 가지는 물건을 폐기하게 된다...는 대충 이런 내용이다. 좀 흥미로운 점은 시리즈가 진행됨에 따라  각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등장인물 사이에 얽히고 설키는 과정이 생긴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앞 시리즈에 나왔던 도둑을 잡았던 형사가 알고 보면 뒤 시리즈에 주인공이 되어 전천당에서 얻은 능력으로 도둑을 잡게 되었다..는 식이다. 너무 같은 구조가 반복되다 보니 조금씩 변형을 갖는 그런 형식이다.


 책을 읽어주면서 두 가지 이점이 생겼다.


첫 번째는 둘째가 이제 이 정도 글 밥 되는 책도 스스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지 한번 뚫고 나면 수평이동은 비교적 쉬운 법이다. 여하튼 독서라는 행위에 초점을 두기 보다 책 내용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어서 만족스러웠다.

 

두 번째는 아이들이 이를 응용해서 나름대로의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얼핏 보았을 때는 전천당의 구조와 유사하게 진행한다. 무심코 얻은 마법의 물건으로 인해 이런저런 사건이 발생하지만, 결국 사용법을 끝까지 안 보아서 생긴 일이다..란 내용이지만, 무언가 모방해서 스스로의 작품을 써냈다는 것이 대견하다. 허접한 A4 용지에 연필로 썼지만 나름 삽화도 넣고 책 모양으로 접어 표지도 만든다. 인풋(input)이 있으면 곧바로 아웃풋 (output)을 만든다는 점에서 직장을 다니는 나보다 나은 점이 많다. 게다가 아이들의 창의력이란  신기하고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은 원래 인간에게 타고난 듯하다. 오히려 입시 위주의 정규 교육에서 이런 발상을 저해하는 요소가 있지 않나 되돌아보게 된다.


 우연히 서점에서 시작된 책이 어느덧 아이들의 창작물이 되어 책꽂이에 쌓여 있다. '시작은 미흡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 꼭 위대한 창작물이 아니더라도 그 과정을 맘껏 즐겼으면 좋겠다. 창작의 기쁨은 아는 사람만 아니깐.



작가의 이전글 월드컵과 도파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