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들어보는 가을이의 비명소리가 차츰 익숙해질 때쯤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처치가 끝났으니 가을이를 보고 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녀석의 가녀린 왼쪽 앞발에 링거를 꼽아놓고 주사바늘을 뽑지 못하도록 붕대로 칭칭 감아놓은 모습이 흡사 깁스를 한 것처럼 생겼는데 자세가 어정쩡해서 안타까우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녀석을 입원실에 넣어두고 돌아서려는데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애처롭게 바라보는 녀석의 눈길이 안쓰러웠습니다.
가을이가 집에 온지 3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가는 우리를 보면서 나만 두고 가냐는 원망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을 나서려는데 그날의 입원비와 치료비를 계산하고 가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내심 퇴원하는 날 함께 계산하면 되지 무슨 벌써 계산을 하나 라고 생각을 하면서 그날의 입원비와 치료비를 꼭 내야 된다고 하는 말에 약간 불쾌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반려동물을 병원에 두고 찾으러 오지 않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방침이 그렇다고 하니 병원비를 계산하려고 병원비를 물었을 때 '아하! 이래서 병원비를 내고 가라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확 밀려왔습니다.
하루 입원비가 4만원이라고 들었는데 링거 꼽고 주사 맞고 전해질 균형 등 몇 가지 검사한 금액이 25만원이 넘었습니다.
병원비가 이리 많이 드는 줄 알았더라면 애초부터 길고양이 녀석들에게 소시지 따위는 주지 않고 모른 척 했을 것입니다.
아무튼 속에서는 천불이 났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그까이꺼~'라는 표정으로 일시불을 외치며 결제를 하고 돌아섰습니다.
다음 날에는 병원에 가지 않고 전화로만 상태를 물어봤습니다.
병원에서는 백혈구 수치는 다행히 떨어지지 않았고 불균형이던 전해질도 균형을 유지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아내가 무척 가을이를 보고 싶어 해서 면회를 갔는데 다행히 밥도 조금 먹고 상태도 양호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 이상이 없으면 퇴원을 해서 통원 치료를 해도 될 것 같다고 하여 우리는 다음날 약을 처방 받고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퇴원하는 날에도 역시 가을이의 치료비는 30만원이 조금 넘게 나왔고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짓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면서 짧은 시간에 참으로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뒤로도 녀석의 식욕은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날이 11월 10일이었는데 이날은 주식캔을 티스푼으로 한 스푼 정도 먹고 간식캔을 반 스푼 정도만 먹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입원을 하던 날보다는 조금 활기차져서 자주 움직이고 장난도 곧잘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고역이었던 것은 녀석에게 밥을 먹이는 일보다 가루약을 먹이는 일이었습니다.
경험이 전무한지라 캡슐로 받아 왔더라면 쉬웠을 것을 그냥 가루약을 주는 대로 받아다가 먹이려니 고생도 그런 생고생이 없었습니다.
아내와 둘이서 그 작은 몸을 부여잡고 입을 벌려가며 약을 넣어주어야 했는데 처음에는 물에 타서 주사기로 입에 넣어줬더니 너무나 쉽게 뱉어버리는 녀석의 완고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입을 벌리고 가루약을 털어 넣고는 코에 바람을 후~ 하고 불어주는 방법을 쓰게 되었습니다.
약을 먹일 때마다 녀석은 무슨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녀석에게 약을 먹이다 실수로 입 바람에 약이 날려 제 입으로 아주 조금 들어왔습니다.
그제서야 가을이가 왜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것 마냥 제정신이 아니게 됐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약의 일부만 제 입으로 들어왔을 뿐인데도 정말 써도 너~무 써서 화딱지나고 열이 나서 욕을 몇 마디 확확 내질러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쓴 약이었습니다.
약을 하루에 두 번씩 먹여야 했는데 우리의 약 먹이는 스킬이 날로 늘어갈수록 가을이의 뱉어내는 스킬 또한 날로 늘어갔습니다.
어떤 날은 광견병 걸린 개처럼 입에 맑은 거품을 물다시피 하면서 약을 다 뱉어내곤 했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그 광경을 봤더라면 저거 미친 고양이를 입양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ㅡ.ㅡ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밥도 조금씩 더 먹고 더 활발해졌는데 문제는 녀석이 대변을 안보는 것이었습니다.
전문용어로 맛동산이라고 부르는 고양이의 대변을 이토록 기다리게 되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저였습니다.
더 슬펐던 건 똥을 못 싸는 녀석의 배를 부여잡고 변의를 느끼도록 배맛사지를 해주고 있는 제 모습이었습니다.
가끔씩 제정신을 차린 것마냥 제 자신을 돌아볼 때면 어쩌면 아픈 건 고양이가 아니라 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그리 깊은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고양이를 좋아해서 기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가 고양이를 좋아하고 또 고양이를 기르고 싶어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알았기에 자연스레 고양이도 받아들이게 된 것인데 가끔씩 발견하는 제 낯선 모습에 저 스스로 놀라고는 했습니다.
어떤 진실들은 선입견을 버려야만 보여지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과거에 저는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으로 이러한 진실들을 알지 못했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저 선입견 없이 바라보고 다가갔을 뿐인데 지금은 고양이에게 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냐 제게 물으신다면 "교감"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 냥이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