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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 Jan 06. 2018

불안감





가을이를 데려온 날이 11월 3일이었는데 3일이 지났을 무렵 녀석의 활동이 급격히 저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밥도 잘 안 먹고 놀지도 않길래 뒤늦게 적응기에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던 찰라 그날 저녁에 본 녀석의 변에서 이전 변과 다르게 변 끝에서 설사끼를 발견하였습니다.
고양이에 대해 초보집사였던 우리 부부였지만 보은이 녀석도 그렇게 범백을 시작했던 것을 경험한 탓에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다음날 바로 병원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입양을 보내시는 분들께서도 보은이가 전염병으로 죽은 사실을 알고 있었고 범백균이 지독해서 6개월 이상 집안에 머물러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기에 가을이를 입양하기 전에 락스 소독을 여러 번 하고 보은이가 머물렀던 자리도 락스를 희석한 분무기와 걸레를 이용해서 구석구석 꼼꼼하게 청소를 한 터라 마음속에서는 이 정도면 되었겠지 라는 안도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온지 3일이 지나서 녀석이 수상한 행동을 보이자 이번에는 전에 갔던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을 찾아보고선 인터넷에서 평판이 좋은 옆 동네의 웰케어 동물병원이라는 곳을 찾아 가을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병원의 담당 수의사 선생님은 여자분이셨고 아직은 앳돼 보였습니다.
아무튼 가을이 이전에 입양한 보은이가 범백으로 죽었고 가을이를 입양한지 4일째인데 갑자기 활동성이 떨어지고 변 끝에 약간의 설사끼가 보인다고 검사를 부탁했더니 그만 범백 키트에서 흐리지만 양성판정을 받고 말았습니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은 여지없이 역시나 하는 결과로 다가왔습니다. ㅠㅠ
선생님께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고 말씀을 드렸더니 역시 통원 치료와 입원 치료가 있는데 범백이 같은 경우는 입원 치료로 초기에 잡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그 의사 선생님도 입원치료에 드는 비용 때문에 확실하게 반드시 입원해야 한다고는 말씀을 못하셨지만 그래도 입원치료를 하게 되면 링거도 맞추고 주사도 놓고 수시로 체크를 할 수 있으니 통원 치료보다 효과는 더 좋을 것이라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병원비는 하루에 기본 입원비 4만원에 치료비는 별도라고 말씀을 하셨고 기간은 길면 일주일에서 보통 3-4일 정도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제 몸이 아파도 병원에 잘 가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병원뿐 아니라 내 몸에 걸치는 옷이나 신발 등에 돈을 쓰는 일도 아까워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가을이를 다른 사람을 통해 입양을 받은 것이 아니고 이전에 보은이의 일을 겪지 않았더라면 통원 치료를 선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라도 가을이를 입양 보내신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가을이마저 잃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입원을 시켰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가을이의 입원 수속을 위해 간호사분들에게 가을이를 넘겨주고 가을이 상태에 대해서 알려주셨습니다. 
가을이는 범백 키트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고 백혈구 수치는 아직 정상 범위이지만 낮은 편이며 전해질 불균형 상태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일단 링거 주사와 몇 가지 필요한 주사를 놓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을이에게 링거를 꼽기 위해 동물들의 치료실로 가셨는데 조금 있다가 그곳에서 들려오는 가을이의 비명소리에 안타까움이 밀려왔습니다.
보은이를 잃고 너무 일찍 가을이를 데려왔나 하는 자책감과 후회도 밀려왔고 또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이래서 기르다가 병들고 아프면 반려동물들을 내다버리는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가끔씩 다음 아고라의 반려동물 방에서 책임감 없이 동물을 입양해서는 안 된다는 글들을 몇 번 본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그게 이런 뜻이었구나 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은 아기 때부터 사람의 손에서 길러진 반려동물들, 특히 고양이들은 길고양이나 야생고양이처럼 생존 능력이 없기 때문에 기르다 버리는 것은 사실상 사형선고와 같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제 현실이 불현듯 깨달아지며 아~ 빼도 박도 못하는 외통수에 걸렸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음속 깊이 한 구석에서 '이런걸 미리 알았더라면 돈 아까워서 고양이 따위는 기르지 않았을 텐데...'라고 제 안의 자린고비는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고양이 중독의 늪에 깊이 빠져버렸기에 '돈 따위는 또 벌면 돼! 그것도 아니면 마누라라도 굶기면 돼~!'라며 제 안의 자린고비에게 윽박을 지르며 들려오는 가을이의 비명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 냥이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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