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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 Jun 01. 2018

업둥이 길냥이


가을이를 입양한 것이 2012년 가을의 일이었고 충남 공주로 귀촌을 한 것이 2014년 9월이었습니다. 그리고 초동이를 업둥이로 들인 게 그해 11월이었는데 어느새 만 2년이 흘러 가을이의 입양기를 기록했던 것처럼 초동이의 이야기도 기록해주고 싶어서 펜을 들기로 했습니다. 

초동이를 처음으로 본 것은 2층 창문으로 뒷집의 테라스 밑에 앉아있던 모습이었습니다. 무척이나 작은 녀석이 그곳에 앉아서 저를 쳐다보는데 혼자 다니기는 아직 어려 보였고 벌써 독립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혼자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다니고 있었습니다. 

사실 초동이 외에도 가끔씩 눈에 띄는 성묘 고양이들은 있었지만 서울 인심이나 시골 인심이나 다를 바 없는지라 녀석들은 사람의 모습만 보이면 부리나케 도망을 치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녀석들 몰래 멀찍이서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통해 녀석들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녀석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아내는 사료를 나눠주고 싶어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제 눈치를 보면서 가을이의 사료를 빼돌려 녀석들에게 조금씩 나눠주고 있었나 봅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우리 집이 우리 동네 길냥이들의 급식소가 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제 생각은 시골이야 도시와는 다르고 자연 환경도 좋으니까 사냥이라도 하겠거니 하고 사료를 주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귀촌 초기에 시골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어찌 보면 이러한 생각이 당연하던 시기였고 이사온 지 한두 달밖에 되지 않았기에 시골 고양이들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때이기도 합니다.



그러던 차에 남의 집 테라스 밑에 앉은 초동이 녀석을 보자 어린 녀석이 안쓰러워 집 앞에 사료를 놓아두기 시작했습니다그리고 그전에 장만한 고프로(Gopro;동영상, 사진 촬영기기)를 구석에 세워두고 타이머를 설정하여 사진을 찍게 두었더니 초동이가 다른 성묘들에게 밀려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습니다그리고 먼저 이사오신 이웃집 분에게 새끼 고양이 이야기를 했더니 하시는 말씀이 얼마 전에 새끼고양이 세 마리를 어미 고양이가 데리고 다녔는데 어미하고 새끼 두 마리는 죽고 한 마리만 산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저희는 살아남은 한 마리가 바로 초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집 입성 첫 날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초동이 녀석이 더 안쓰럽기도 하고 측은한 마음이 더 드는 계기가 되었고 턱시도 냥이를 둘째로 들이고 싶어했던 아내의 바람과는 전혀 상관 없이 녀석을 둘째로 들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포획틀을 구매하여 녀석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 닭가슴살을 미끼로 매달아 두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은 쉽게 포획이 되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녀석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탓에 우리가 놓은 사료도 잘 먹지 못하고 포획틀에 매달린 고기 쪼가리라도 먹어보겠다며 덥석 미끼를 무는 바람에 쉽게 잡힌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참 애처로웠습니다.


베란다에 격리된 초동이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순진무구한 저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녀석은 그냥 단순히 수퍼 먹식이 아깽이었을 뿐 제가 생각하던 애처롭고 불쌍한 녀석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지도 않게 수퍼 먹식이 업둥이 길냥이께서는 초겨울 어느 날 불쑥 우리 집의 식구가 되었습니다. 

 

- 냥이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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