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 오기 전, SNS에서 스치듯 본 한 장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구명조끼도 없이, 비키니에 오리발과 물안경만 끼고 열 마리쯤 되어 보이는 상어에 둘러싸여 유유히 바닷속을 유영하는 사진.
“하와이에 가면, 꼭 나도 상어와 바다에서 수영을 해봐야지!”
그런데 막상 하와이에와보니 어학원에서도, 검색엔진 검색에서도 내가 원하는 상어와 함께 바다 수영을 할 수 있는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철창 속에서 상어를 구경하는 ‘노스 쇼어, 샤크케이지 투어’에 관한 정보만이 가득했다.
'이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닌데…'
내가 원한 건 케이지 없이 바다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며 상어와 마주치는 일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해진 것이 있다.
상어는 노스쇼어(North Shore) 지역에 많이 산다!
그렇다면 방법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내 독일인 룸메이트와 저녁을 먹으며 주말 동안 뭘 했냐는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카우아이 섬에 가서 헬기 투어를 하고, 노스쇼어에 가서 상어랑 프리다이빙도 했어.”
헬기? 상어? 프리다이빙? 내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이거야! 내가 원하던 바로 그거!
꼬치꼬치 깨물었다.
나도 나도! 나도 열정 넘치게 하와이를 즐기고 싶어!
어떤 업체인지, 어떻게 예약하는지, 할인받는 방법까지.
친절한 룸메이트 덕분에 드디어 업체 이름을 알아냈다.
고민할 필요가 있는가?
망설일 필요가 있는가?
그냥 행동하면 됐다.
그렇게 나는 바로 웹사이트에 접속해 예약을 진행했다.
예약을 진행하다가, 낯선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Kama’aina Discount’
카마(Kama)는 ‘아이’, 아이나(Aina)는 ‘땅’을 의미한다.
카마아이나(Kama’aina)는 ‘땅의 아이’, 하와이 제도 장기 거주자를 의미한다
하와이 원주민뿐만 아니라, 인종, 국적에 상관없이 하와이에 거주하는 장기 거주자를 의미한다.
나는야 하와이에서 한 달을 살아가는 사람,
어학원에서 발급해 준 학생증이 있는 장기 거주자
나는, 이곳의 ‘땅의 아이’ 다.
이 작은 단어 하나가 내게 주는 감정은 생각보다 컸다.
하나우마베이에서도 할인을 받은 경험이 있지만, 웹사이트로 결제를 하며 처음 알게 된 단어 ‘땅의 아이’.
하와이 땅의 아이. 이 말이 이렇게 근사하게 들릴줄이야.
단순한 여행객이 아닌, 이곳에서 진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소속감.
내가 점점 하와이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단순히 할인받는다 정도의 즐거움만 느꼈는데, 알면 알수록, 이 단어에는 훨씬 근사한 의미가 담겨있는 듯했다.
이 땅의 아이. 내가 지금 밟고 있는 이 하와이 땅이, 단순히 관광지나 스쳐 지나가는 공간이 아닌, 나를 품어주는 하나의 집이라고, 내가 이 땅의 아이로 대접받고 있구나 하는 자부심 같은 것이 몰려왔다. 이 소속감이 나를 더욱 하와이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상어 프리다이빙 투어를 예약했다.
그렇게 설레던 투어 전날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는데 문자 하나가 왔다
최소 인원이 미달되어 내가 예약한 12시 투어가 취소되었다는 말과 함께 대신 아침 10시에 오면 다른 배를 타고 갈 수 있다고...
어쩔 수 있나.. 10시 투어에 가야지.
아침 7시
하루의 시작을 느긋하게 택시를 타면 1시간 만에 편하게 할레이와로 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불편한 길을 택했다.
묵직한 롱핀과 스노클이 든 다이빙 가방을 이고, 여행자의 감성을 만끽하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한 번의 환승과 1시간 40분 간의 여정.
버스환승센터에서 잠시 강을 산책하며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감상하고, 오리를 구경하고, 낯선 풍경을 음미하는 시간.
택시를 탔으면 혼자 편하게 이동했겠지만, 버스를 타면 어떤 인연이 다가올지 모를 설렘이 따른다.
내 등뒤에 멘 긴 다이빙가방이 눈길을 사로잡았는지,
“기타를 치니? 어디를 가니?” 물어보는 낯선 이들.
“할레이와에 가면 마츠모토 쉐이빙을 먹어봐.”
이 불편한 길이 오히려 나를 설레게 만든다.
우리는 때때로 너무 쉽게 빠른 길을 선택하지만,
때로는 조금 느린 길을 선택하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낯선 상황에 처하고, 낯선 사람을 마주치고,
불편을 감수하며, 새로운 감각을 일깨울 기회를 갖고, 새로운 감정과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하는 것.
스스로에게 이 시간을 선물하는 것.
그 선택이 여행을 더 깊고 아름답게 만들어 줄지 모른다.
마침내, 노스쇼어(North Shore), 할레이와(Haleiwa)에 도착했다.
이곳은 와이키키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오목조목 모여 있는 작은 건물들,
맑은 하늘과 아침 바다가 반겨주는 시골스러운 촌스러움이 정감이 가는 곳.
부지런을 떤 덕분에 시간이 남아 알리 비치(Ali’i Beach)에서 서퍼들을 구경했다.
서퍼들의 천국. 서퍼들의 목표이자 성지. 노스쇼어
이제 나도 나만의 목표를 향해 출발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