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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20. 2019

그냥, 뭐라도 쓰고 싶었다.

홍진경 씨의 글을 읽고

나는 엎드려서 무언가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곳은 침대가 될 수도, 소파가 될 수도 있다.

발이 더우면 답답하다 느끼는 탓에, 발은 이불 밖으로 내어 놓고. 너무 무겁지 않은 이불을 양 어깨에 두른 뒤, 베개에 턱을 콕 박아 넣고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작업을 한다. 


"허리에 무리 간다."


지나가다 한 번씩 내게 말한다. '앉아서 해, 허리 아프겠다.'


어쩌면 내 삐뚤어진 어깨의 원인일 수 있고, 왠지 늘 아쉽게만 느껴지는 도톰한 볼살을 만든 주범일 수 있지만,

나는 그 어느 자세보다 '엎드려 있는 나'일 때 가장 안정감을 느낀다.



*



온기, 를 좋아한다.

한여름에도, 일명 '냉장고 이불'은 잘 덮지 않는다. 그 까끌함도 싫지만, 살을 맞대고 있어도 한 줌의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아서, 인 듯하다. 한 번씩 몸이 덥다 싶게 따뜻해지면, 일어나서 기지개도 한번 켜고. 에어컨 바람이 너무 강하다 싶으면, 밖에 내놓고 있던 발을 이불속으로 끌어당겨 한번 비비적 댄다. 금세 따뜻해진다. 


혼자서 한참을 엎드려 있다가, 옆으로 누워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잔잔하게 TV 소리가 베개 틈으로 스며들고, 대낮에 불을 켜지 않은 남향의 집은 적당히 따뜻한 어둠을 품고 있다. 한참 집중하다 지친 내게 상을 내리듯, 못 이긴 척 눈을 감고 낮잠을 청한다. 켜지 않은 향초에서도 향기가 난다. 외로울 새가 없다.



*



한 번씩 원인 모를 불안함에 시달리곤 한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뭐라도 해야 해결이 될 것 같은데, 이 마음이 해소될 것 같은데. 그저 멍하니 앉아 있거나, 이불을 돌돌 말아 안은 채 몇 시간을 목적 없이 핸드폰 속 새로운 글을 누르고, 누르고, 또 누른다. 그렇게 모르는 누군가의 글을 타고 가다 보면 끝내 새로운 글이 없는 지경까지 온다. 그러면 봤던 글을 또 읽고, 봤던 웹툰을 또 읽는다. 그러다 지치면, 도입부만 봐도 금방 잠에 빠져 버리는, 그래서 정말 잠들고 싶을 때 혹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때 모든 걸 제쳐 두고 보게 되는 ASMR 영상을 튼다. 따뜻한 색감과, 꾸며지지 않은 친근한 목소리, 손등 위에 쉐도우를 문지를 때의 간지럽고 몽롱한 느낌. 아주 천천히 나른해진다. 엎드려 있던 내가, 자연스럽게 몸을 웅크리고, 귓가에는 톡톡톡.. 둥글리듯이.. 말랑말랑한 단어들이 맴돈다. 어느새 잠이 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상에서의 도피 법.  



*



우연히, 홍진경 씨의 글을 읽었다.

불현듯 '글을 쓰고 싶다.'는 다급함을 느끼게 하는 글들이 있는데, 그녀의 글 역시 그랬다. 

홍진경 씨의 글을 엮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필자의 말로는, 싸이월드 시절 그녀의 미니홈피에 업로드하던 글들이 좋아, 알리고 싶은 마음에 모아 보았다고 한다.

읽자마자 소름 끼치게 좋았다.

심지어 띄어쓰기, 줄 바꿈까지도.

사실은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냥 뭐라도 쓰고 싶었다.


가장 좋아하는 토막.


 


너는

그동안 어디에 있었니

누구를 사랑하며 살았니

무얼 먹었니

쉬는날엔 주로 어떤 소일로 시간을 보냈니

부모님은 어떤 분이시니

형제는 또 어떻게 되니


내 동생의 결혼할 사람을 앞에 둔

것처럼 나는 

한 작은 여자를 마주하고 정말이지 그런게 궁금해져

깜짝 놀랐다

아 사람을 만나 이리도 별개

다 궁금해 본 것이 얼마만인가

내 키의 반만한 이 아이가 누구인가

분명 지금 나를

온통

흔들고 있는 무서운 기집애

내가 너 때문에 웃겠구나

내가 너 때문에

그리고


아플수

도 

있겠구나.



2004 3월의 디미트리

정신을 처음 마주하고




꼭 에세이를 출간해 줬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 큰 키로, 어쩌면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파리 클럽에서의 형사 댄스(?)'를 추는 그녀의 내면에

이런 심연이 있다는 건 정말 반칙이다. 


누군가에게 

무언가 쓰고 싶게 만드는 건

정말 대단한 일 같다. 

정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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