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생각 없던 내가 팀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지난 6년 동안 회사에서 네 욕하는 사람 본적이 없어'
'너한테 맡기면 안심 돼, 잘 해낼 것 같아'
'그건 따로 배운거야? 아니면 원래 잘하는거야?'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를 꽤 다니고 팀장이 달기 전 즈음 내 바로 위에 있는 상사로 부터 들었던 피드백이었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에이,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죠, 감사합니다'하고 멋쩍게 웃곤 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특출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는 나의 부족한 점에 몰두하며, '어떻게 하면 내일을 조금 더 잘할 수 있을까', '지금 내 연차 정도엔 어느정도 해야 잘했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일년간 팀장으로 지내보니 위 세가지 피드백이 내가 팀장이 됨에 있어 가장 핵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너에게 맡기면 안심 돼, 잘 해낼 것 같아'는 오랫동안 축적된 '신뢰'였다. '네 욕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어'는 높은 '평판'이었다. 마지막으로 '그건 따로 배운거야? 아니면 원래 잘하는거야?'는 내가 맡은 일에 대한 '전문성'이었다. 물론 이 세가지만으로 좋은 팀장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팀장을 달고 지난 일년간 수많은 좌절과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이 요소가 팀장으로서 첫 걸음을 내딛게 해준 것은 틀림 없었다. 높은 평판, 신뢰도, 전문성 이 세가지가 없다면 팀장으로의 시작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이었을지 곰곰히 생각해봤다. 먼저 평판. 나는 평판관리를 어떻게 했을까. 사실 나에겐 '평판관리'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특히 이전에는 '평판'을 체크 할수 있는 지표도 없어서 굳이 그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은 다면평가 등으로 다양한 부서, 다양한 위치의 사람들에게 평가 받지만 말이다. 더욱이 나는 낯부끄러운 말에 알러지가 있어서 '아부'를 잘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평판이 좋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진심을 잘 표현하는 타입이었다. '고마운데.. 말안해도 알겠지'라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다. 늘 아낌없이 표현했다. 나에게 배움을 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 누군가에게 늘 감사를 표시했다. 말로하기 어려우면 메시지로라도 꼭 표현했다. '어제 조언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일이 한결 수월하게 마무리 되었어요. 말씀 주신 내용으로 저도 열심히 고민하고, 추후 업무에도 적용하겠습니다.정말 감사합니다.' 흔히 우리는 사과할때 중요한 요소로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로인해 무엇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고 있는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것인지를 빠짐없이 표현해야 한다고 한다. 감사도 마찬가지다. 내가 당신에게 무엇때문에 감사를 느끼고, 지금 배품 받은것이 다음에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는지 자세히 이야기하면 '누구도 겉치레 인사'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런 인사를 하는 나 역시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관계의 발전은 여러 협업에서 시너지를 발휘하곤 한다. 평판관리를 하려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선순환이 업무의 성과까지 이어진 다는 것을 참 많이 경험 했다.
또한 나는 화를 잘 내지 않는 타입이었다. 회사에는 나 말고도 화를 낼 사람이 참 많다. 더욱히 화를 내서 상황이 해결되는 것을 별로 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에겐 화에 대한 '정당성'이 없었다. 우리는 일을 하기 위해 모인 개개인이자 집단인데, 화 내는 것이 우리일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회의적인 사람 중 하나였다. 늘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화내서 될것 같았으면 벌써...'였다. 그저 화를 내기전 잠시 일어나거나, 할말을 잠시 메모지에 적어 스스로 여과하기도 했다. 어쨋든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니 화가 아닌, 그 목적으로 갈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우리의 목표로 가려면 무엇이 더 효과적인지'의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볼 뿐이었다. 누군가는 묻는다. '그렇게 화도 안내고 참으면 사람들이 호구로 알아요', '참기만 하면 누가 알아줘요?'라고 말이다. 나는 화를 내지 않을 뿐 표현한다. '늘 고생하시는 것 잘 알고 있지만, 아까 그렇게 말씀하신 부분은 많이 서운했어요, 결과가 더 좋게 나왔으면 해서 제안드린 부분인데 저도 살짝 힘이 빠지네요' 이렇게 표현하고 나면 대부분의 의 경우 상대도 사과를 하고 같은 상황이 재발되지 않는다.
두번째로 신뢰도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개인적으로 돌아보았을 때 신뢰도는 제자리에서의 묵직함이었다. 맡은 일을 묵직하게 해내는 것. 다른 것은 없었다. 나에게 맡겨진 과제를 어떻게 하면 잘 수행할 수 있을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나의 일을 찾아 내 몫을 해내는 것이 전부였다. 내가 하는 일의 관점을 크게 가지고, '지금쯤 이게 되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며 내가 해야 할일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논의 했던 것 같다. 그그 자세로 한회사를 오래 다니다보면 신뢰도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내 일에 대한 전문성. 일에 대해서 나는 사실 이기적인 편이다.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고, 누군가 만들어 놓은 일을 하고 싶지 않고, 나의 의견을 반영해 주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전에는 그 방법을 몰랐다. '나는 SNS 운영담당자니까', '나는 홍보담당자니까'하는 틀에 나도 모르게 갖혀있었다. 그안에서만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내가 전체를 기획해 보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대로 짧든 길든 제안서 형식으로 만들어 당시 팀장님에게 보냈다. 괜찮다면 진행해도될지, 안괜찮다면 의견을 부탁드린다고 하면서. 팀장님이 일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해 보기도 하고, 브런치에서 본글이나 유튜브 마케팅강의 그대로를 적용해 캠페인을 짜보기도 했다. 더 다양한 일을 경험해 보는 욕심도 더 늘게 됐다. SNS 담당자지만 크리에이터 관리를 진행하고, 크리에이터를 활용한 마켓 세일즈까지 확장하고, 그러다 시즌 캠페인 전체를 기획하게 되고. 새로시작하는 작은 일들이 하나의 캠페인으로 발전하는 것을 자주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년정도 지나니 그 전년도에 비해 더 큰 업무영역과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되든 안되든 이런저런 제안을 던지고, 그런 제안들이 하나 둘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일을 만들어 주도권을 잡게 되면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권리와 선택권이 늘어나는 것을 경험했다. 자연스레 다른 사람의 일에 불려가거나, 보조해야 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곧 그 일들이 성과가 됐다. 연말에 한해를 돌아보면 떠올릴 수 있는 굵직한 프로젝트들이 생겨났다. 나의 상사와 임원들도 그 프로젝트와 나를 연결지어 떠올릴 수 있게 됐다. 그것들이 자연스레 연봉협상이나 연말 인센티브에서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깨달았던 점은 '나의 고객은 회사와 회사 구성원'이라는 점이었다. 더불어 일을 할 때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다만 내가 잘하는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것이었다 이었다. 그것이 양쪽으로 성장을 일으 킬 수 있는 방법이라 믿었고, 지금도 그리 생각한다. 우리는 가끔 일을 하다가 '우리회사는 너무 수직적이야, 보수적이야, 결국 답은 정해져있는데 뭘자꾸 아이디어를 내래?'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또는 '다른 회사는 이정도 일하면 이정도 연봉이라던데, 우리회사는 너무 말도안돼'.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직장인의 클라이언트는 1차적으로 회사와 상사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하면서 '나는 잘 하는데 주변이 못 알아본다'는 식의 모순적인 셀프 평가는 그저 안타까움을 살 뿐이다. 내가 월등한다면 나의 월등함을 받아줄 새로운 둥지를 찾아 떠나면 된다. 고민할 것이 없다.
두담이 겪은 팀장되는 과정
1. 평균이상의 평판을 장기간 유지한다
2. 회사로부터 신뢰를 얻는다
3. 하는 일에 있어 전문성을 인정받는다
4. 주도적인 업무 패턴을 갖게 된다
5. 하는일에 있어 성과가 눈에 띄게 된다
6. 지속적으로 성과를 보이나 어느날 물리적 자원의 한계를 맞는다
7. 팔로업을 위한 후임이 생긴다
8. 다시 6번으로 돌아가고 또 7번을 반복한다
9. 업무관련 서브가 2-3명이 생기면 팀 독립이 논의된다
10. 팀이 독립되고, 비소로 팀장직을 맡게 된다.
그리고 위 세가지는 아니지만, 또 한가지가 있다면 주로 선배들을 따라 다녔던 것이다. 쉬는시간까지 선배들이랑 같이 있으면 불편하지 않냐고 질문 받기도 하지만 그것 만큼 회사에 빨리 적응하는 방법이 없다. 이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이나 성과가 무엇인지, 요즘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특히 회사에서 인정받는 선배를 따라 다니다보면 닮지 않을 수 없고, 사내에서 인정받지 않을 수가 없다. 회식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회사 밖에서 누군가와 어울리는 횟수를 10년간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반기지 않았지만 회사에 있는 시간에서 만큼은 최대한 내가 배울점이 있는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리고 그게 마음이 편하고 재미있었다.
반대로 의식적으로 피했던 것도 있다. 회사나, 다른 사람 욕을 일상으로 하는 사람과 거리를 두었다. 나에게 사내 단짝으로 기피대상 1위는 '불평불만 많은 사람'이었다. 나도 회사 욕을하고 미운 사람, 상황이 생기면 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회성일 뿐이다. 대화의 주제가 항상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 누군가에 대한 뒷담화라면 회사생활이 즐거울 수가 없다. 회사가 원하는 방향으로도 내 개인적으로도 성장을 일으킬 수가 없다. 내가 선택한 일과 직장을 깎아내리는 것은 결국 나를 깎아 먹는 일임을 늘 명심했다.
팀장이 된 후로도 느낀점이 참 많다. 앞으로의 글들 통해 새로 알게된 부분과, 나에게 부족했던 부분들, 이겨내려 노력하고 있는 부분들을 적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