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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담 Dec 27. 2023

얼마.. 줄 수 있는데요?

가을동화 송혜교 뺨치는 눈물 젖은 소득 올리기 스토리

돈벌수 있는건 뭐든 해보겠다던 두담... 그 결과는..?



직업을 두고 이야기 할때면 꼭 하는 말이 있었다. "아 개발자를 할 걸 그랬어, 사이드잡 하기 그렇게 좋다며? 진짜 부럽다" 곧 그런생각을 하게된다. "아니 근데 진짜로, 잠깐만. 나 진짜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어?" 정말 이상했다. 그래도 홍보/마케팅 분야에서 1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는데 정말 내가 직장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는 사람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약간의 절망이 들기도 했다. '나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좌절할 순 없었다. 노트를 꺼내 펴고 '내가 만약 강연을 한다면'이라는 셀프 질문 아래 답을 적기 시작한다. 다행이 그 무렵즈음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들 중 일부가 업계에서 흔하지 않았던 케이스들이었다. 특히 중소기업이라면 따라하고 싶을 만한 성공사례들도 있었고, 그경험을 나는 글로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글로 풀어낼 수 있다면 말로할 수 있고 곧 강연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몇가지 주제를 풀어낸 뒤 평소 곧잘 들어가던 커리어 강의 사이트에 메일을 적어 보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소속 소개, 그리고 강의로 다루고 싶은 이야기를 적었다.


왠지 잘 될것 같은 예감에 프로필 사진까지 촬영했다. 대게 강사들은 프로필 사진이 있고, 강의 썸네일에는 그 사진이 걸리곤 했으니 나도 곧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몇일 지나지 않아 회신이 왔고 강의 사이트 담당자 개인적으로도 그 주제가 궁금했다며 강의로 만들어 보고싶다고 했다. 강의 개요표를 전달하고 모집 상세페이지까지 나왔다. 그야말로 모든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했다. 회사에도 이런 활동을 해도 되는지 문의 후 허락까지 받아두었다. 제작된 강의 모집 페이지와 썸네일로 동네방네 소문까지 냈다. 퇴근 후 늦게까지 강의 자료를 만들고 고민한다는 이야기에 남자친구는 몰래 야식 서프라이즈로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었다.


이렇게 술술 풀리는 날들이 김첨지의 운수 좋은 날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어느날 걸려온 전화 한통에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여자의 직감은 무서운 것이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왠지 모르게 무거운 강의 사이트 담당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정말 개인적으로도 욕심이 났고 잘해보고 싶었는데 강의계획을 취소해야할것 같아요". 아니 이게 무슨소린가. "네? 어떤 이유에서 였을까요?"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아 그게.. 인원이 미달이에요, 최소 50명은 신청을 해야하는데 많이 모자라요". 납득이 가기도 했다. 이해가 완전히 가는 상황이었다. 나는 인플루언서도 아니었고,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기업 마케터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책을 낸적이 있는 마케터도 아니었다. 더욱이 학벌이나, 이력이 그리 특출날 것이 없었으므로 수강자 입장에서는 "얘가 누군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것이다.


힘들 때 웃는자가 일류라고 했던가. 실소가 나왔다. '그래 내가 무슨, 준비하면서도 자신없었어.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스스로 의문이었어. 그래 망신당하지 않고 차라리 취소된 걸 다행으로 여기자'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그해 판이 요상하게 흘러갔다. 나는 이미 강의를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준비하며 여기저기 이야기 해두었고, 모집상세에 썸네일까지 나왔었으니 나는 졸지에 사기꾼이 된것 같았다. 그렇다고 다시한번 동네방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저 그 강의 있죠? 폐강됐어요~ 신청자가 별로 없었거든요~"하고 광고 할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던 어느날 대학교 동기에게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덕댈! 너 그때 그 강의 한다는거 잘했어? 우리회사에 강의 할 자리가 있는데 너가 와서 그거 다시 한번 해주라". 등골이 서늘했다. 하지만 솔직해야 했다. "아.. 언니 그거 취소됐어. 듣고싶어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데 ㅠㅠ" 그런데 동기는 더 기쁘게 반응했다. "ㅋㅋ아진짜? 그때 만든 내용은 있지? 그럼 그걸로 여기서 해!" 예상치 못한 흐름이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강의 대상도 이미 정해져있어 모객하지 않아도 될 뿐더러 강의 시간도 20분으로 짧아 나의 부담이 확 줄어든 것이었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콜!!!!"


덜덜 떨며 온라인 강의를 마쳤다. 유튜브로 중계됐던 지라 나의 좋은 포트폴리오로 남아있기도 하다. 쌘노란 원피스에 어딘지 어색한 메이크업의 조화가 때로 이불킥을 유발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최소한 '강의도 안하고 강의한 척하는' 사기꾼에서 벗어난 것 같아서 기뻤다. 회사에서도 자기개발 열심히하고 지식도 나누러 다니는 모범직원 이라는 인상이 생기니 회사 생활이 수월하고 작은 자신감이 더 붙기도 했다. 한번 두번 나의 이야기를 블로그며 개인SNS에 올려 두니 또 다른 곳에서 불러주기도 했다. 강의로는 생각보다 짭짤했다. 시간당 10만원이었던가.


좋은 경험이었지만 그 한두번으로 저축액을 의미있게 높일 순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가 달달한 제안을 해왔다. 바로 퇴근 후 보험설계사로 활동해 보라는 것이었다. 정착금도 몇백나오고 어려울 것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내 보험을 바로알기 위해 하나하나 분석하고 따져물었더니 '야, 이럴거면 아예 너가 보험설계사를 하면어때?'라고 이야기 한 것이었이 시작이었다. 시험도 어렵지 않고 따두면 가족이며 친구며 보험을 대신 들어줄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이야기가 가장 솔깃했다. 바로 공부해서 시험을 땃다.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두종류 시험이 있는데 둘다 자격증을 취득했다. 얼떨결에 프리랜서 보험설계사로 친구네 사무실에 등록됐다.  정착금도 받고 퇴근 후 이런저런 교육도 듣고 아침일찍 온라인 출석체크도 하던 어느날 현타가 왔다. 아니 뭔지 모를 죄책감이 몰려왔다. 나만해도 아프고 큰일 생기면 의지할데가 보험밖에 없는데, 나같은 사람이 책임감없이 몇푼 벌겠다고 계약을 유도한다? 양심에 가책이 느껴졌다. '내가 그들의 상품과 인생과 사고를 얼마나 책임질 수 있을까'  생각했을때 내가 대처할 수 있는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첫 고객이자 피해자인 친언니의 화재보험을 마지막으로 설계사 해지신청을 했다. 그렇게 받았던 정착금을 반납하고 나니 버린 시간들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열심히 한다고해서 모두 돈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드라마 가을동화 속 송혜교의 대사처럼 당시 나는 마음속에 무엇을 하든 '얼마.. 줄 수 있는데요?'를 떠올렸다. 돈만 되면 뭐든 하겠다는 기세였다. 그런데 이렇게 몇번의 경험을 지나고 나니 '그냥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내 커리어를 제대로 살려보자라고 생각하고 이직을 알아봤다. 내 능력에 맞춰 돈을 더 줄 수 있는 곳을 찾자. 당시 동료들이 우르르 이직 하는 시즌이었고, 나도 함께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던 떄였다. 주변의 소개와 평소 욕심났던 자리 등 몇군데 면접을 봤다. 내 연봉이 그리 높진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나를 좋게 보았던 것인지 기존 연봉 대비 1천만원 더준다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지금쯤 이직하면 천연봉 천만원은 그냥 올릴 수 있데~"라던 누군가의 말이 맞았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영 마음이 움직이질 않았다. '지금회사도 충분히 좋은데, 그저 아쉬운건 돈 하나 뿐인데. 생각해 보면 지금 회사에 좋은 부분도 많은데 겨우 천만원 보고 내가 그리로 옮겨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 어차피 옮길 생각이면 여기서 결판 보고 후회없이 떠나자'. 그리곤 다시 본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새로운 팀장이 오셨을 즈음이라 떠오르는 아이디어, 지금 시즌이면 있었으면 좋을 기획안들을 떠오르는 대로 만들어 올려드렸다. 마인드가 열려있고 팀원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데 열렬했던 분을 만나 기획안에 시너지가 붙기 시작했다. 초안을 올리면 더 좋은 아이디어로 보완되고, 실행하고 나면 우리팀의 성과, 그리고 곧 나의 성과로 연결됐다. 포트폴리오 한페이지, 두페이지 좋은 사례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사내에서도 나의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던 것도 이때였다. 이전에는 '착하고 열심히 하는 애'였다면, '새롭게 이런걸 해봤는데 반응이 좋았어, 걔가 한건 했네'할수 있는 직원이 된 것이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더해져 연봉협상에도 반영되고, 희귀하지만 보너스로도 책정됐다. 시간이 그렇게 흐르고 나니 이직을 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저금할 수 있는 돈이 조금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후로도 이런저런 나의 게시물들을 보며 사업하는 지인들이 소소한 알바거리를 주기도 했다. 그 시점을 기준으로 꾸준히 연봉도 인상되다 보니 저축을 계획하는데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통장에는 겨우 1-2천이라는 '신생아 종자돈', '난자상태의 종자돈' 뿐이었지만 그것 마저도 감사했다. 그리고 꿈이 커지기 시작했다. '나 아파트 사도 될것 같은데...'   


이어 필자는 '경매 강의'와 '아파트 내집마련 강좌'를 듣게 되는데...


(3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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