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금 Feb 23. 2016

언제나 처럼 그 자리에

기다림의 시작

후추와 연애를 하기 전, 후추는 절대로 군대에 가지 않는다고 자신했었다.

어릴 때 어깨에 철심을 박는 큰 수술을 했었고 이래저래 아픈 곳이 많아 4급으로 공익근무요원으로 빠지게 될 것이라는 말만 믿고 나는 후추와 연애를 시작했다.



사실 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군대에 다녀오기를 얼마나 잘했나 싶지만, 당시에는 입대 20일 전에 불쑥


"나 군대가. 10월 29일에"


하는 말에는 약간의 배신감과 더불어 분노가 밀려왔다.


내가 묻기도 전에 너는 군대에 가지 않으니 나를 만나도 생이별은 할 일이 없을거라며 나를 꼬여내고선 이제와서 갑자기 입대를 하다니. 이건 분명 사기연애였다.


내가 울고 불고 하는 통에 후추는 놀라 휴가가 많다는 공군에도 신청서를 넣고, 공군 준비를 아주 열심히 했으나, 입대 한 달 전에 타군 지원은 불가. 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게 내가 챙겨주는 두 번째 생일을 보내고 이틀 후 후추는 논산으로 입대를 했다.



후추의 입대에 얼마나 많이 울었는 지 모른다. 밥을 먹다가도 울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도 울고, 길가는 군인들만 봐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까지 우리는 비밀로 연애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펑펑 시원하게 울수도 없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입대 후 첫 단체사진이 올라오던 날! 후추는 이상하게도 포동포동한 군인들이 가득한 부대에 있었다. 의아해하고 있던 나는 그 후 편지를 통해 단체사진의 진실을 알게되었다.


그 부대 사람들이 유독 통통이들만 모인게 아니고, 입대 전 맛있는 음식을 하도 먹여서 살이 최고로 많이 쪘던 후추는 비만소대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어쩜 너는 군대도 그렇게 귀엽게 갔니.

비만소대라니.


비만소대에서 열심히 체중감량을 한 후추를 첫 면회때 내가 못알아보고 지나친 일도 있었다.

후추는 그게 두고두고 서운하다고 이야길한다. 마치 내가 다른 남자를 면회와서 자기를 슥 지나친 것 같았다고..


그렇게 1년 11개월의 기다림이 시작됐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그 긴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거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너라서 가능했어. 후추야. 고마워



작가의 이전글 함께 맞는 10번째 생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