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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사막 Oct 09. 2020

정든 살림살이를 정리하며

한국으로 이사 준비

6년 동안 벌여놓은 살림살이를 정리하자니 집안이 도둑맞은 모양새가 되어간다.


우리 가족이 발 딛고 살았던 이 땅에서 우리의 흔적을 지워내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지난주 살림살이를 정리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병이 났다.

새벽까지 잠이 오질 않고 슬슬 입맛이 없어지더니 결국 몸에 무리가 온 것이다.

감기 한번 앓지 않던 나인데.


풍요했던 아랍에서의 생활만큼이나 나의 살림살이는 불어나 있었다.

쓰지 않는 그릇 세트와 주방 용품,

창고에 넣어두고 신지 않은 신발들,  

몇백 개는 족히 될 것 같은 아이의 장난감 자동차와 

옷장 주인인 양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입지 않는 옷들.

집안 구석구석 묵혀놓은 물건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우리는 남편이 회사에서 얻어 온 종이 박스에다 한국에 가져갈 물건들을 정리하여 담는 중이다.

버릴 건 버리고 쓸 만한 것들은 모아서 남편 회사에서 일하는 포터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적은 돈으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포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살림살이를 버리는 것이 점점 과감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이가 그린 그림 한 점마저도 버리는 게 아쉬워서 눈물을 흘렸었는데,

무거운 액자나 오래된 가방, 다 읽은 육아서적 등을 버리면서 조금씩 홀가분해지는 느낌이었다.

쓸모없는 물건이 비워진 공간은 참으로 깔끔하다.

자잘한 잡동사니가 굴러다니던 서랍장도 비우니 이보다 더 시원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무엇이 아쉬워서 이토록 무겁게 살았는가?

'아쉽다'는 말은 아마도 그리워질 거라는 말이겠지.

그리운 것은 정리하고 있는 이 물건들이 아니라

그것에 깃든 나의 시간들일 것이다.


어쩌면 세상의 이치는 이사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정착할 때가 있으면 떠날 때가 있고

사랑할 때가 있으면 그 정을 떼어낼 때가 있다.

살아가는 순간들이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자연스럽게 순응하는 삶.

소극적인 삶의 태도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인간의 한계가 아닐까?  


우리가 걷던 산책길과 우리의 정원

바닷가에 자리 잡은 야자나무

내 아이가 재잘대던 놀이터와 수영장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저녁 하늘까지.

내가 쏟아낸 시간들을 추억하며 나는 또다시 살림살이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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