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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사막 Feb 12. 2020

해외에서 우리 아이 영어 적응기

생존 영어


아이가 38개월이 되었을 때 한국을 떠나 해외오게 되었다.
아파트 앞 작은 놀이터와 어린이 도서관이 세상에 전부였던 어린아이가 비행기로 10시간이나 떨어진 낯선 곳에서 어떻게 적응을 할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먼저 아이에게 영어 단어 몇 가지를 가르쳤다.
'엄마, 아빠, 화장실, 안녕, 먹는다, 주세요, 미안해'
아이가 배울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이었다.
어린아이에게 뭘 얼마나 가르치겠는가?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심정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UAE는 아랍 국가이지만 현지인보다 외국인의 비율이 훨씬 높은 나라이기 때문에 영어를 주로 사용한다.
우리가 처음 자리 잡았던 아파트 안에도 인근 주변의 이슬람 국가인 이집트 시리아 파키스탄뿐만 아니라, 러시아 네팔 미국 캐나다 정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신기한지 차마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었다.
하지만 아이는 나와 달랐다.
머리색과 피부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아직 너무 어려서 외모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일부러 그 부분에 대해 짚어주지 않았다. 혹시라도 무의식 중에 차별을 심어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동네에는 동양인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들도 우리를 무척 신기해하며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래서일까? 영어에 자신이 없는 내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었고 덕분에 나는 어색함 없이 엄마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각자 가지고 나온 간식을 나눠 먹기도 하고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대한 정보도 얻으며 매일 해질 녘이 될 때까지 함께 놀았다.

"지원이는 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지?"

언젠가 아이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자 이렇게 답했다.

" 놀이터에서 찬구들한테 영어 배웠어."

아이는 2년 동안 살았던 아파트에서 친구들과 놀기 위해 그들의 말을 따라 하며 입을 뗐던 것이다.


몇 달이 지나 아이를 너서리에 보냈다.

너서리는 어린이집을 영국식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동네 엄마들이 주로 보낸다는 너서리에 아이를 넣어놓은 첫날 나는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아이가 너서리에 들어가 있는 그 네 시간 동안 내 가슴은 타들어갔다.

' 아무리 몇 개월을 놀이터에서 보냈다 한들 선생님의 말귀를 알아들을까? 피피(쉬) 푸푸(응가)를 가르쳤지만 화장실 실수를 하면 어떡하지? 도시락 싸준걸 애가 잘 챙길 수 있을까?'

너서리를 다니기 시작해서 졸업할 때까지 8개월 동안 이런 고민은 끝이 없었다.

너서리에 가기 싫다고 떼쓰면 달래서 들여보내고 울면 또 달래서 들여보내고... 이는 그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온몸으로 부딪히며 낯선 말들을 배웠으리라.

어린애가 고생했을 생각을 하니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너서리를 졸업하고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인 국제 학교에 유치원생으로 입학을 했다.
너서리는 공부보다는 돌봄의 개념이므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으로 바꿔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학교 선생님은 미국에서 학위를 딴 미국인이었다.
학교에서는 어떻게 영어를 가르치나 궁금했는데 살펴보니, 일주일 동안 알파벳을 한 개씩만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첫 주는 A, 둘째 주는 B 이런 식으로 Z가 될 때까지 매일 천천히 반복해서 배우는 것이다.
Z까지 배우고 나면, 다시 A로 돌아가 또 일주일 동안 A로 시작하는 단어를 가르쳐주고 그 단어를 그림으로 그리거나 글씨를 따라쓰면서 발음을 가르쳐주었다.
유치원을 2년 동안 다녔는데 초등학교 1학년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아이는 알파벳과 그와 연관된 단어들을 알았고 각 단어들의 음절을 끊어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은 수준이 비슷한데 단어 열개를 일주일간 학습하고 목요일에는 한국처럼 단어 받아쓰기 시험을 보았다.
2학년 때에는 그 단어를 사용해서 짧은 문장을 만들었다.
학교에 있는 7시간 동안은 영어만 사용하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한해 두 해 지나면서 아이의 영어 실력은 자연스레 늘게 되었다.
또한 집에 돌아오면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며 계속 영어를 사용했다. 인도 친구가 하는 영어, 아랍 친구가 하는 영어 발음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알아듣고 의사소통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다양한 영어를 들으며 아이에게는 영어에 대한 융통성이 생긴 것 같았다.

이제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다.
학교 수업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영어에 집중을 하다 보니 아이는 한국어보다는 영어를 더 편하게 생각한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집에서 엄마 아빠와 대화할 때나 한국 친구를 만났을 때뿐이기에 아이는 책도 영어로 된 책만 읽으려 하고 한국 속담이나 한자로 된 단어는 잘 모르게 되는 부작용이 생겼다. 영어에 비해 다양하게 사용되는 한국 어휘가 어렵다는 것이다.
둘 다 잘하려는 것은 부모의 욕심일까? 아이 교육은 생각처럼 마음대로 안된다.
영어를 배우는 아이를 지켜보니 아무리 언어 흡수력이 빠른 아이라 할지라도 영어를 모국어처럼 내뱉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파벳부터 시작해서 단어들을 익히는데 몇 년의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아이가 흥미를 잃지 않도록 영어를 즐겁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9월이면 아이는 4학년이 된다.

이제 나의 숙제는 한글이다. 아이가 한글과 한국말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쓰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학습시켜야 한다. 또 한 번의 힘든 여정이 될 테지만, 엄마로서 포기하지 않고 조급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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