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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사막 Feb 09. 2020

터키에서 가방을 도난당한 날

악몽같은하루


어제저녁 백화점에 가서 장을 보고 있었어. 

필요한 물건을 다 사고 계산대에서 돈을 내려고 보니 내 가방과 남편 가방이 감쪽같이 사라진 거야! 

정말 당황스러웠어.

보안 요원들도 많고 카메라가 널린  백화점에서 가방을 도난당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야. 

가방을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어야 했는데 우리가 너무 마음을 놓고 있었어.

그 안에는 우리 세 식구의 여권과 지갑 내 핸드폰이 들어있었고, 지갑 안에는 현금과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과 신용카드가 들어있었어.

한마디로 가방 안에 우리의 전 재산이 들어있던 셈이지.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남편의 핸드폰이 바지 주머니 안에 있었기 때문에 전화를 사용할 수 있었다는 거야.


우리가 계산대 앞에서 우물쭈물하며 당황해 하자 계산원이 마이크에 대고 터키 말로 다급하게 뭔가를 외쳤고, 보안요원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우리를 cctv 있는 방으로 데려갔어.

모니터 해보니 어떤 중년의 여자가 우리가 물건을 고르는 사이에 카트에 걸어놓은 우리 가방을 슬쩍 훔쳐가는 거야! 뉴스에서나 보던 소매치기라니...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무엇보다 아이가 너무 놀랐어.

아이도 cctv를 같이 봤거든.

눈으로 직접 도둑을 봤으니 그 상황이 얼마나 무서워.

근데 나와 남편은 이미 정신이 나가 있어서 아이를 챙길 여력이 없더라고.

"이제 우린 어떡하지!? 어떡해!"

우리를 아무도 모르는 여행지에서 그것도 영어가 통하지 않는 터키에서 너무도 막막해 수십 번 '어떡해'만 외쳤던 것 같아.

돈과 카드가 없으니 빈털터리가 된 데다 우리 신분을 증명할 여권이 사라졌으니 얼마나 황당해?

국제 미아가 될까 봐 두려웠어.


마트 보안 담당자와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 한 명이 우리와 동행해서 택시를 타고 한국 대사관에 갔어.

9시가 넘은 시간이라 모두 퇴근한 상태여서 대사관 프런트에 사정 얘기해서 사건을 접수하고 바로 경찰서로 가서 도난 신고를 했어.

감사하게도 대사관 직원께서 나와 주셨고, 경찰에게 터키 말로 번역해주셔서 무사히 진술서를 작성 할 수가 있었어.

경찰서에서 일을 마치고 대사관 직원분이 내일 대사관에 나와서 여권을 발급하라고 말씀해주셨어.

게다가 본인의 돈까지 우리에게 빌려 주신거야.덕분에 그 돈으로 우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돌아왔어.


그런데 사람이 참 희한한 게 큰일을 당하니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드는 거야.

그때 택시 안에서 내 마음가짐에 대해 각성하게 된 것 같아. 험한 세상으로부터 내 아이를 지켜내고 남편에게 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한편 나는 갑자기 핸드폰이 없어져서 마음이 더 휑한 거야. 이제껏 내가 핸드폰을 굉장히 의지했구나.

핸드폰이 없으니 온 몸으로 현실을 자각하는 느낌이 참 낯설었어.

대사관 직원께서 말씀하시기로는  핸드폰에 비밀번호가 걸려있어서 도용할 수는 없대.

공장에 팔던지 아니면 지갑에 들어있던 돈만 빼고 가방은 버렸을 거래.

그리고 남편이 여행자 보험을 들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면 잃어버린 돈이랑 핸드폰이랑 물질적인 보상은 해준대.


우리는 오늘 아침에 숙소 근처 사진관에 가서 찍은 여권 사진을 들고 한국 대사관에 찾아갔어.

살다 살다 대사관에 가보다니!

그런데 대사관 영사님께서 마치 우리 마음을 읽은 것처럼 너무나도 따뜻하게 대해 주시는 거야.

대사관이 호텔이랑 연결되어있는 건물인데 영사님이 우리 세 식구를 데리고 가서 점심도 사주시고 터키 홍차도 대접해주시고 우리 아이한테 초콜릿도 주시고.

말할 수 없이 친절을 베풀어 주신 그 분께 세상의 모든 복을 끌어다가 안겨드리고 싶은 심정이야.

여권을 한국에서 재발급해서 터키까지 도착하는데 5일에서 7일 정도 걸린대.

곧 돌아가려고 했는데 우리는 앞으로 열흘이 넘도록 이스탄불에서 표류하게 생겼어.

당장 현금이 없기 때문에 시누가 대사관으로 보내준 돈으로 어떻게든 버텨야 할 것 같아.

혹시 가방을 훔쳐간 사람이 신용카드를 썼을까 목록을 확인해 봤는데 안 썼더라고. 대사관 직원분의 말씀대로 현금만 빼고 가방을 버린 것 같아.


집으로 돌아가면 신용카드를 재발급 받아야 하고, 보험도 보상받아야 하고, 여기서 열흘이나 더 있어야 되고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서 깨닫는 것도 있어.

물건은 훔쳐갈 수도 있지만 내 머리에 든 것은 아무도 훔쳐갈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책을 많이 읽고 공부도 하면서 내면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돈이란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

십원 한 장도 허투루 쓰지 말아야겠어.

오늘 먹을 음식이 있고 우리 가족이 함께 누울 침대가 있음에 감사해야겠다는 것도.

무엇보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베풀어준 친절을 결코 잊지 않을 거야.


악몽 같은 어젯밤의 일이 한층 단단해진 내 삶에 하나의 에피소드로 남길 바라며 이제 내일을 위해 그만 잠을 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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