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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사막 Oct 17. 2020

로또를 꿈꾸던 남자

행복이란 뭘까.

평생 동안 매주 로또를 사며 부자가 되는 꿈을 꾸는 한 사람을 알고 있다.

로또 발표날까지 그는 행복하다.

자식들에게 집을 사주고, 여행을 가고, 맛있는 것을 실컷 먹는 꿈을 꾸므로.

그는 로또만 당첨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공상에 빠져든다.

만약 내가 로또에 당첨된다면 바로 백화점으로 달려가 프리티 우먼에 나오는 줄리아 로버츠처럼 실컷 쇼핑해야지 하면서.

아.. 상상만 해도 신이 난다!

그러나 그가 당첨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가 로또를 구입하는 이유는 어쩌면 복권을 손에 쥐고 있는 동안은 행복한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에게 행복이란 뭘까.

복권에 당첨되어야만 행복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이 겉으로 보기엔 고통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 안의 본질은 축복이라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만일 신이 인간에게 복을 주신다면 감사의 형태가 아닐까?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치고 가족끼리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것,

깨끗이 씻을 물과 편안히 잠들 수 있는 포근한 이부자리가 있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커피 한잔의 온기를 나누며 웃을 수 있는 것.

그래서 좌절과 아픔이 폭풍처럼 다가와 넘어지더라도 다시 회복할 용기를 갖는 것 말이다.


그는 나의 아버지이다.

평생 직장 생활하시며 여섯 식구를 건사하셨다.

아빠께서 일하시는 동안 사람들에게 강직하고 정직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으셨다.

과거에 태어나셨다면 청렴결백한 가난한 선비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아버지의 하얀 와이셔츠 주머니에는 늘 복권이 들어있었다.

나는 어렸었지만 그 종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아빠 삶의 돌파구이자 희망이었음을.


아버지는 퇴직하신 후에 암이 발견되어 작년까지 투병생활을 하셨다.

그렇게 좋아하시던 담배와 술을 끊고 치료에 전념하셨지만 말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아빠를 뵙기 위해 작년 여름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들어갔었다.

나는 아버지를 내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빠의 몸이 30킬로 이상 빠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한 약 때문에 제대로 걸을 수도 말을 하실 수도 없으셨다.

암이 사람을 말려 죽이는 무서운 병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병원에서는 아빠의 상태가 위중하여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하였다.

우리 가족은 아빠를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스탠드 시술을 권하셨다.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그 방법뿐이라고 하셨다.

우리 가족은 시술 날짜를 받아놓고 눈물로 기도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스탠드 시술을 받으신 이후 아버지의 몸이 점차 회복되신 것이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건강을 되찾으셨다.

몇 날 며칠 동안 흰 죽 세 숟가락도 넘기지 못하셨던 아버지인데 이제는 식사도 제때 하시고 살이 붙으셔서 운동도 하실 수 있다.


힘든 고비를 넘기신 우리 아빠를 떠올리며 인생에서 과연 행복이란 뭘까 생각해본다.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지개 같은 것일까?

아니면 인생의 구비구비마다 숨겨있는 보물 같은 것일까?

아빠는 이제 생각이 바뀌신 것 같다.

로또를 그만두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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